흐린 봄날 아침이다.
어제의 노동으로 좀 피곤하여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오히려 중간에 깨어 영화를 좀 보다가 잤더니 오히려 7시 무렵까지 자게 된다. 겨울에는 7시 무렵도 빠른 거지만 봄이 오면서 7시는 해가 뜬 지 한 참 지난 다음이라 늦은 감이 있으나 몸 상태가 적절하여 상쾌하다.
오늘도 역시 할 일이 많아 일찍부터 머리도 감고 좀 서둔다. 여기서는 외출할 일이 없으면 머리를 매일 감지는 않는데 오늘은 총선 사전투표도 해야 하고 어제 구입하지 못한 데이지꽃을 시장에서 사다가 심어야 하고 점심 식사 후에는 운동도 나가야 한다.
정원에서 일을 할 때나 주변을 산책할 때, 시장 갈 때에도 등산복(작업복)에 헌 등산화차림으로 항상 지내지만 강화군민으로서 처음 하는 선거권 행사이니 머리 정도는 감고, 의관도 단정히 하고 가야 한다 (관은 없으니 모자는 벗고 가야 한다). 작업복이 따뜻하고 편하다는 이유보다는 옆집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익명성에 숨어 지내는 것이 더 좋아서 계속 입게 되는 것이 작업복이다.
이제는 날도 따뜻해졌으니 봄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어제 옷장에서 20년 전에 누님이 맞추어 준 개량한복이 있어서 요즘 같은 날씨에 입기 딱 좋을 것 같아서 꺼내 놓기는 했는데 활동가도 아닌 내가 한복을 입고 투표장에 가기에는 아직 자신감이 없다.
나는 6남 1녀의 막내인데 큰형 바로 밑인 누님이 부산에 살고 계신다. 내 어릴 때 누님은 집안일이며 농사일을 거의 도맡아 처리하였다. 큰 형은 군대에 가 있고 동생들은 아직 어릴 때여서 누님이 남자처럼 아버지를 도와서 농사일을 다했다. 내가 아플 때는 항상 누님이 업고 학교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내가 국민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때인 23살에 집 마당에서 전통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시집을 간 그 누님은 이제 70대 후반이 되었다. 시집가서 계란장사, 화장품장사, 식당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참 어렵게 살다가 그래도 20년 전에 부산 거제리 시장에서 칼국수 장사를 하면서부터는 조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막냇동생에게 개량 한복 1벌을 한복집에서 맞추어 주었던 것이다.
부산 거제리 시장에 있는 누님의 칼국수 집으로 집사람과 같이 가서 누님이 직접 만들어 파는 그 칼국수를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고 손님도 제법 많았다. 누님은 15년 전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의사들의 의료 과오로 먼저 보내고 그 후로는 식당도 접고 노후를 한과 눈물로 지새우고 있다. 참, 안타깝다. 의사들의 과오가 너무나 심하고 명백하여서 의사 여러 명이 법원에 정식 기소되었는데 마음 약한 누님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서 합의서를 제출해 주었다. 합의를 해주지 않아도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는데 가슴만 더 아프니 빨리 잊고 싶다고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고 합의해주고 말았다. 그 의사들은 모두 벌금형만 받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누님이 합의금으로 받은 돈으로 오피스텔을 사두고 매월 40만 원의 월세를 받는데 3개월 전부터 임차인이 월세도 주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 고 며칠 전에 전화가 왔다. 임대차 계약서를 전송받아서 검토해 보니 12년 전인 2012년에 계약한 작은 오피스텔 10평짜리 방 1칸인데 아직까지 한 번도 보증금(400만 원)이나 월세(40만 원)를 올린 적 없이 그대로이다. 부산의 부동산 시세는 잘 모르지만 어떻게 12년 동안 그대로 두었을까? 그 임차인 양반도 참 힘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