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의 부고를 받고

by 프로스윤

아침 10시 무렵 잔디밭에 시비를 하려고 농협에 복합비료와 몇 가지 먹거리를 사고 있는데 Y 선배로부터 ‘A형 본인상’이라는 부고를 받았다. 참, 어이가 없고, 머리가 띵 했다. 본인상 이라니. 이 형이, 이제 62세인데.

형은 나보다 두 해 위 80학번 선배이다. 대학교 고시반 2년 선배이다. 고향도 경남 고성으로 같고 내가 한 참 방황할 때 고성군에 있던 형 집에서 몇 밤을 자기도 했고 내가 고민할 때 친구가 되어 술도 먹어주었고 내가 심심할 때 같이 당구도 치고 놀아도 주고, 여행도 같이 가 주던 그런 선배였다. 형의 큰 형은 큰 절의 주지스님 이셨는데 내가 시골에 근무할 때 그 절에 가서 가끔 뵙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때 형에 관한 이야기는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1학년 입학해서 대학교 고시반으로로 아무것도 모른 채 동기 7명과 함께 입실하였을 때 형은 참 우리들과 많이 놀아주었다. 그때 나는 많이 방황했다. 대학을 다닐 것인가, 재수를 할 것인가, 군대를 갈 것인가, 고시 공부를 할 것인가 등을 고민할 때 형은 그냥 나와 놀아주었고 함께 술을 마시고 당구를 쳐주었다. 그러다가 군대를 다녀와서 뭘 할 것인지 고민할 때 ‘그냥 고시 공부나 하는 것이다’라고 아주 대수롭지 않게, ‘네가 할 것은 고시공부 밖에 없는 것 같다’는 투로 툭 던졌고, 나는 고민 끝에 결국 고시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군에 제대한 내게 고시공부에 필요한 기본서, 참고서, 문제집 등을 상세하게 알려주었고, 나는 거의 5개월가량 사법시험 1차 준비를 혼자서 하였고 합격은 못하였지만 어느 정도 자신감은 생겼다.

그 후 복학해서 함께 도서관을 다니면서 공부하였고 나는 1991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지만 형은 좀 늦었다. 형의 사법시험 합격이 늦어진 것은 천성 때문이다. 주변 모든 사람의 고민, 고통, 아픔을 함께 해주고 함께 놀아주느라 정작 자신의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형은 비상한 머리와 기억력으로 1차 시험은 나보다 먼저 합격하였지만 최종 합격은 나보다 2-3년이 늦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조장을 맡았고 동기와 조원들과 엄청 사이가 좋았었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 업무는 정말 잘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선후배들과 그렇게 잘 어울리고 활달한 성격인 형이 변호사를 하면 최고로 잘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법연수원 수료 후 학교 선배와 함께 개업을 하여 약 1년 정도 변호사를 하다가 곧 그만두었고 그 후로는 아예 변호사 업무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 업무를 그만둔 경위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 내막에 대하여 형은 나에게 지금까지 언급해 본 적이 없고 나도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으므로 지금까지 모르는 것이다.

이제는 물어볼 데도 없으니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다. 30대 중반까지, 오로지 고시공부에만 매달려 오다가 드디어 합격하여서 변호사가 되었는데 정작 1년 정도만 변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폐업하고 대학 주변 당구장, 여관, 술집을 전전하면서 지금까지 생활해 온 것이 형의 삶이었으니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간에 연말 무렵 송년회를 겸하여 가끔 만나기도 하였고 지인의 상갓집에서나 보기도 하였지만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형에게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형도 나에게 연락해오지 않는 바람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였다. 형은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먼 진주까지 내려와서 문상을 하기도 했다. 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형에 대하여 근황을 물어보기도 하였는데 항상 대학 주변 여관을 전전하고 있고, 치아가 모두 빠져서 고생이 많다, 삶이 좀 힘 드니 성격이 약간 까칠해졌다는 이야기까지는 듣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 만나자고,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참, 아쉽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자주, 많이 밥도 사고, 술도 사고, 후원금이며 기부금도 내기도 했는데 왜 이 형에게는 밥 한 번 제대로 사지 못했는가? 내 20대 청춘 시절의 멘토였던 형을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다. 이렇게 은퇴하고 강화에서 시간 많을 때 함께 종종 얼굴이라도 보고 용진진 앞 염하강에서 낚시라도 할 수 있는데. 참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후회가 된다.

저녁에 강화에서 1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이지만 문상은 다녀와야겠다. 대답은 없겠지만 영정 사진이라도 보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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