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음에 대하여

생각

by 프로스윤

'알맞다'는 의미에 대하여 요즘 계속 생각이 많다.

나에게 맞는 수준이라는 뜻도 되겠다.

저 사람은 나와 잘 맞는 사람이다, 저 옷은 나에게 잘 어울린다, 저 정도는 내가 감당할 정도이다, 적당하게 먹고 마셔서 딱 기분이 좋은 상태다 등 나를 기준으로 만족할 만한 상태 또는 기분일 때 주로 쓴다.

적절하다 또는 적당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알맞다 ‘는 ’적절, 적당’보다는 더 나와 밀착된 느낌이 드는 말이다. 물론 적절하다, 적당하다, 알맞다 모두 주관적인 관점보다는 객관적인 관점이 더 강조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적당하다, 적절하다’는 대충 비숫하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알맞다’는 말을 더 사용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거의 좌우명에 가까운 말이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이다. 만족할 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험을 당하지 않는다는 도덕경 구절이다. 나는 이 말을 2017년 8월 17일 퇴직할 때 직원들과 후배들에게 퇴임사에서 했던 말이다. 퇴임하면서 그래도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하고 여기에서 그만둔다는 의미로 다소 자조적으로, 자기 위안의 말을 한 것으로 들렸겠지만 24년의 공직생활을 접는 마당에 진심을 담아서 한 말이었다. 내가 승진을 하지 못했을 때 주변이나 요로에서 다음번 인사 시까지 한 번 더 기다려보라는 위로와 언질을 주기도 하였으나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사표를 던졌다. 집사람도 나의 의견에 흔쾌히 동조했다. 내 동기 중에 일부는 다음을 기대하면서 사표를 내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차장검사 정도까지가 나에게 알맞은 자리이지 더 이상 높이 올라가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후 1년가량 변호사를 할 즈음에 정치권의 고위직에 관한 제안이 있었고 검증과정을 마친 상태에서 그 자리가 과연 나에게 맞는 자리인지 고민을 많이 했고 결국 그것은 나에게 알맞은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거기에 가는 것을 접었다. 인사팀에 혼란을 주었고 내가 가기를 기대하고 추천한 사람에게 실망을 시켰지만 지금도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로펌을 그만둔 것도 더 이상 돈벌이로 변호사를 하는 것에 회의가 들었고, 지금의 재정상태이면 나의 수준에 알맞은 것이 아니겠냐 싶어서 더 이상 돈을 버는 변호사는 하지 않기로 하고 로펌의 형사그룹장과 에쿼티 파트너 변호사로서의 지위를 던졌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재물도 그 사람에게 알맞은 수준이 있는 법이다. 어떤 사람은 수 백억의 재산을 감당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수억 원의 재산도 감당, 유지하기도 힘들다. 알맞지 않은 재산을 탐내면 화를 입기도 한다.


나에게 알맞은 재산은 어느 정도일까? 보통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파손되거나 잃었을 때 특별한 상심 없이 바로 그 물건을 다시 살 수 있는 상태일 때에 그 사람에게 맞는 재산상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명품 가방 한 개를 샀다가 도난을 당하거나 상처가 심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에 바로 그 가방을 다시 살 수 있으면 그 가방을 가질만한 정도의 재력은 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집 한 채를 샀다가 사기를 당해서 날려먹었지만 바로 다시 새 집을 계약할 정도가 되는 사람도 있고 가방 한 개를 잃게 되자 상심이 너무 커서 괴로워하고 또다시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경제력이라면 그는 명품 가방 한 개를 가질 재력은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지 않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이 있다면 재력가라고 판단하는 것도 비슷한 예일 것이다.

나는 차-국산 자동차- 1대 정도는 다시 살 수 있을 정도라고 판단된다. 집을 두 채 정도 살 정도는 안되고 그럴 필요도 없고 국산 자동차 정도는 새로 살 능력이 되었다고 판단되어 변호사를 그만둔 것이다. 나에게 알맞은 재산은 이 정도이니 더 이상 탐내거나 무리해서 더 벌려고 하지 말자. 강화도에서 살아가는 데는 자동차는 꼭 있어야 되므로 여기에 알맞은 만큼만 가지고 즐겁게 살자.


이전 23화신은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