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에는 홍차(紅茶)도 괜찮다.
I. 잔디밭에는 어제 내린 눈이 쌓여 있고 안개 낀 염하강을 물안개가 감싸고 있어 풍경이 몽환적이다. 멀리 문수산 정상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용진진 용마루를 가끔 지나가는 산새들만 보일 뿐 인적도 없다.
어제 잠시 길고양이 반반이만 먹이를 먹고 갔고, 샘 많은 까망이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 새끼를 키우는 쫄보는 추워서 그러는지 최근에는 얼굴을 못 본 지 꽤 되어서 집사람과 딸은 쫄보가 이 겨울을 잘 나고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텃밭에 어설프게 설치한 부직포의 받침대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내려앉고 말았다. 11월에 마늘이랑 청경채, 봄동을 심고 12월 말에 부직포를 덮었는데 2차례의 눈에 폭삭 주저앉은 것이다. 부직포 바깥에 그냥 둔 봄동은 얼어서 완전히 죽었는데 그래도 부직포 안의 채소들은 살아남아 이 겨울이 지나면 나의 풍성한 식탁에 오를 것으로 잔뜩 기대했는데 여의치 않을 것 같다. 다시 부직포를 덮거나 살대를 추가로 세우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II. 갈수록 게을러지는 것 같다. 이틀 만에 머리를 감았다.
찐빵을 데우고 계란 프라이를 1개 해서 바나나 반 개와 요구르트 1병으로 아침을 먹는다. 저번에는 아침에 무나 배춧국을 끓이고 제법 푸짐하게 먹었는데 날이 추워지니 그것도 점점 귀찮아진다. 아침은 최소한 간단하게 먹고 점심을 좀 잘 먹어야겠다. 그래도 따끈한 찐빵과 바나나의 달콤함이 칼칼한 아침 속에는 잘 맞고 요구르트의 시원함과 합쳐져서 간단한 아침으로는 나쁘지 않다. 토스트 대신에 찐빵일 뿐이지 레스토랑에서 먹는 서양식 조찬과 별 다름이 없고 영양도 충분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렇게라도 아침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다.
여기에 오늘은 커피보다는 따끈한 차가 땅긴다. 사무실에서 철수하면서 그곳에 있던 차도구를 이번에 강화로 가져왔다. 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는 십 수년이 지났고 꽤 여러 종류 차도 즐겨 마셨지만 최근에는 커피 맛에 빠져서 차를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오늘은 따뜻한 홍차를 마시고 싶다. 홍차 속에 꽃잎이 몇 장 들어간 화차이다. 진한 꽃향기가 홍차와 어우러지고 용진진 단청과 염하강 물안개가 차 맛에 어울린다. 강화로 차를 가져오기를 잘했다.
길고양이 까망이가 갑자기 나타나서 밥 달라고 보챈다. 추운데 얼른 밥을 챙겨주고 현관문을 열어주니 이 녀석이 의심도 없이 냉큼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시골에서는 모든 것들을 다 믿어 주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