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운 길이 무섭다
어제 제법 눈이 많이 내려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을 대나무 빗자루로 한 차례 쓸었는데 그 이후에도 진눈깨비와 비가 내려 바닥이 얼어 미끄럼틀처럼 되었다. 발바닥에 닿는 차가운 듯한 촉감이 그리 나쁘지 않지만 길이 미끄러우면 몸이 긴장된다.
언제부터 인지 미끄러운 길에 긴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7-8년 전 진주 형님 댁 대문 앞에서 미끄러져서 뒷머리를 살짝 울타리에 부딪히기도 하였고 그 무렵 어머니께서 미끄러져서 고관절을 다치시고 꽤 오려 병원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나의 기민한(?) 순발력과 다리 힘이 이제는 주변 상황변화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돌발 사태에 대처할 능력이 점차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노화가 시작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요즘은 물기가 조금이라도 있는 계단이나 낙엽이라도 밟으려면 잔뜩 긴장하고 엉거주춤하면서 거의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그곳을 지나간다.
노화는 자연의 이치이거늘 이를 거역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대부분 하는 탈모 대책, 눈꺼풀 수술, 기미와 점 제거, 주름 개선 등 미용 효과가 있는 시술들을 전부 거부하였다. 집사람이나 주위에서 안검이 쳐진 것은 보기 싫으니 간단하게 시술하라고 하였으나 내게는 맞지 않은 것이라고 아직도 거부하고 있다. 신경 쓰는 것 이라고는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가 보니 요즘 내 몰골이 완전히 팍삭 늙은 시골 할아버지 모습이다. 머리카락은 거의 빠져서 뒤쪽에만 조금 남아있고, 눈썹도 없어졌고, 눈 밑의 가죽은 축 처져서 병든 불도그처럼 되었다. 그래도 이게 자연이고 원래 내 모습 아니겠나. 가끔 TV에서 80이 넘은 김동건 아나운서가 아직도 가요무대를 정정하게 진행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약간 오싹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보았던 그 모습- 50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80세가 넘은 지금까지 아직도 정정하게 방송을 하고 있다. 나는 다 늙었는데 나보다 한참 나이 든 저 양반이 40년 전 모습으로 텔레비전에 나오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화장하고, 시술하고, 고치고, 세월을 거부하는 심리가 무엇일까? 사실, 여자들이 화장하는 심리가 무엇일까 한번 깊이 연구해 봐야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화장하는 세상이 되었다. 젊게 보이는 것이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늙어 보이는 것이 싫은 것도 당연한데 나는 아직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날씨가 차고 길이 미끄러워 딱히 외출할 계획은 없으나 용진진을 거쳐 집 앞의 강화 둘레길을 한 바퀴 돌아보자. 내리막길에 조심스레 내려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