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다녀와서
12월의 끝자락까지 왔다.
연일 계속되는 저녁 모임에 약간 지쳤다. 그래도 어제는 중간에 한 번 깨기는 해도 좀 긴 시간 잠을 자서 6시 무렵에 깨었지만 한결 개운한 느낌이다. 그 전날 워낙 잠을 자지 못해서 어제는 정말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목이 간질거리면서 감기가 걸리기 직전의 상태이고 머리는 무겁고 한쪽의 두피가 둔통이 느껴지는 것이 불쾌한 상태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그래도 이 상태로 집안에 있으면 짜증만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축 가라앉은 몸을 이끌고 대학동기들 모임에 나갔다.
어제 나갔던 대학동기들 모임은 내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같은 학번 동기들의 모임이었다. 같은 학과나 같은 단과대학 모임도 아니어서 학교 다닐 때나, 그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전혀 만난 적이 없는- 같은 대학교를 다녔던 같은 나이 사람 모임이었다. 약 10년 전에 이 모임이 만들어질 때부터 나에게 참여하라는 연락이 왔지만 그때는 내가 현직에서 한창 바쁠 때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모임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회비만 보내고 지금까지 참석하지 않았었다. 최근 2-3년 내에 그 동기들 모임 중에서 작은 동아리 형태의 소모임 회장을 맡은 친구가 - 역시 그도 본 적은 없다- 계속 연락을 해 오길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가다가 이 번에는 한 번 나가보기로 마음먹고 어제의 송년모임에 나갔다.
10여 명의 중늙은이들이 앉은 데로 나를 안내해 준 고깃집 종업원은 내가 그 모임을 찾아온 것이 맞는지 꽤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예약자 명의의 손님들 쪽을 알려주었음에도 그쪽을 보면서 계속 망설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얼굴들인 데다 갑자기 꽤 나이 든 초로의 사람들이 불콰하니 큰 소리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나도 저 모임의 일원이라는 데 스스로 적잖이 놀랐다.
가져간 명함을 돌리고 구석에 자리를 앉아서 간단하게 소개를 하고 옆과 앞 좌석의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자리에는 익숙해졌다. 다들 소주와 맥주를 섞기도 하고 이미 꽤 많은 술들이 돌았던 분위기여서 나에게 술을 권했지만 나는 맥주만 한 잔 받아놓고 거의 먹지는 않았다. 원래 술을 잘하는 편이 아닌 데다 요즘은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억지로 먹어서 뭣 하나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 같으면 분위기를 위하여 억지로라도 먹던 맥주 한 잔도 잘 먹지 않는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외로 쉽게 친해지는데 나도 놀랐다. 그 친구들도 나보고 처음 나왔는데 의외로 낯 가리지도 않고 오래전부터 만났던 사람 같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45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았던- 물론 그전에도 알지도 못했던 같은 대학 동기들이 말이 좋아 동기이지 전혀 관계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놓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근황만 묻는 정도였음에도 오래된 친구들 같았다. 참 의외였다. 우리는 2차로 생맥주집으로 옮겨서 맥주를 마시고 또 3차로 커피집까지 자리를 옮겨가면서 계속 함께 했고 마지막에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면서 헤어졌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할 사람이 있어 아쉽게 헤어졌지만 여차하면 4차라도 갈 기세였다.
60대가 되어서 하는 모임이면 모두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가끔 나가는 골프모임은 그야말로 그 골프장에서 만난 사람들인데 어제의 동기들 모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모임에서 일부는 서로 말을 터면서 형 동생 하기도 하지만 나는 전혀 말을 놓지 않고 깍듯하게 존대하면서 2년 이상 그 모임을 하고 있다. 함께 운동을 하고 저녁도 하는 모임이지만 전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모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모임이 즐겁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다. 만나면 같이 한 나절을 운동하면서 보내고 식사도 자주 하는 편이며 항상 카톡 대화방으로 소통하는 모임이니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항상 서로의 발톱은 감추고 있는 듯한 분위기는 있다. 그렇지만 어제의 그 대학동기 모임은 전혀 발톱이 없는 무장해제된 그런 모임 분위기였다. 왜일까?
그야말로 원형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20대 초반에 같은 캠퍼스에서 4년가량을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소통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몸속에서 비슷한 감정이나 느낌이 생기게 되었고 그런 느낌은 40년가량의 세월이 지났지만 없어지지 않다가 40년 만에 다시 만나자 다시 되살아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처음 만났음에도 전혀 서먹하지 않았고 오래된 친구를 만났던 느낌이다. 외국에서 외국인들만 보다가 한국인을 보면 엄청 반갑고 안심이 되는 듯한 그런 느낌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한 동류의식을 넘는 좀 특이한 감정이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좀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그래서 다음 모임도 나가야겠다는 기대감도 생긴다.
어찌했건 사람들과의 모임은 즐겁다. 강화에서 집사람 이외에는 별로 교류하는 사람 없이 생활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가끔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