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였어도 거부할 수 있었을까
명령은 어디까지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20년 가까이 군복을 입었던 사람으로서, 지금도 제복을 입고 재난 현장을 뛰는 사람으로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계속 이 질문 앞에 서 있다.
2024년 12월 어느 밤이었다.
퇴근 후 거실 소파에 앉아 뉴스를 틀었다. 아이들은 이미 잠들었고, 아내도 방에 들어간 뒤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서 맥주 한 캔을 따고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화면에 '긴급속보'와 함께 익숙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검은 전투복, 야간투시경, 일사불란한 움직임.
나는 맥주캔을 내려놓았다.
화면 속 그들의 자세가 눈에 익었다. 어깨너비로 벌린 다리, 허리춤에 모은 두 손,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20년 전 내가 배웠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구령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리듬을 알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리모컨을 든 손이 멈췄다. 채널을 돌리지 못했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거실을 채웠지만, 나는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화면 속 군복만 바라보았다. 저 안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을까. 혹시 내가 가르쳤던 후배가 있지 않을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의 첫 번째 군번이 시작된 곳은 특전사령부 특수전학교와 제9공수특전여단 제53공수특전대대였다.
1997년, 스무살의 나는 그곳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6주간의 신병교육, 공수기본과 특수전 교육을 수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훈련들, 진통제 없이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던 천리행군은 발바닥 물집이 터지고, 또 터진 자리에 새 물집이 생겼다. 그래도 우리는 걸었다. 명령이었으니까.
"절대충성, 절대복종"
그것이 특전사의 신조였고, 특전사의 존재 목적이었다. 그것이 군인의 본분이라 배웠다. 명령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명령은 그저 따르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그렇게 믿었다.
특전사 부사관, 육군3사관학교 생도, 군사경찰 장교로 신분이 변하면서 나는 명령을 받는 위치에서 명령을 내리는 위치로 옮겨갔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한 번도 이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본 적이 없었다.
명령이 잘못되었다면, 그래도 따라야 하는가?
소파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12월의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지만, 문득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불빛들이 점점이 빛나고 있었다. 저 불빛 아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뉴스를 보고 있을까.
나는 난간을 잡고 서서 오래도록 생각했다.
저 화면 속 후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동 명령을 받았을 때, 헬기에 탑승했을 때,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들도 나처럼 의심 없이 따랐을까. 아니면 잠깐이라도 멈칫했을까.
27년 전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따랐을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훈련받았으니까. 명령 앞에서 생각하지 않도록, 몸이 먼저 움직이도록 훈련되었고, 그것이 군인의 미덕이라 배웠으니까.
거실로 돌아와 TV를 껐다.
어둠 속에서 나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군은 국가 수호에 없어서는 안 될 조직이며 그곳에서 청춘을 바쳐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이후로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복종이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린다면, 그래도 복종해야 하는가? 명령을 내린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명령을 따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나는 그들이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명령에 복종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짐을 지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약 20년간 수천 번의 명령을 받고, 또 내렸다. 그때의 나는 국가를 지켰을까, 명령을 지켰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왜 군인이 되고 싶었는지. 어떻게 "절대복종"을 배웠는지. 그리고 명령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무엇이 보였는지.
20년 전 그날로 돌아가 본다. 아버지의 낡은 사진첩을 펼쳤던 어린 시절, 군복 입은 아버지를 보며 막연히 품었던 군인의 꿈.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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