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하나가 사람의 생각, 행동을 바꿀 수 있을까.
검은 천 조각 하나에 3개월을 쏟아붓고, 여기까지 오는데 동기의 20%가 낙오했다.
나는 그 모자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의 시간을 버텼나.
그리고 드디어 그 모자를 손에 쥔 날 밤, 나는 왜 잠을 이루지 못했을까.
공수교육 수료 자격 강하 4회가 끝났다.
기구강하 1회, 치누크 헬기 강하 1회, C-130H 고정익 비무장 강하 1회, 야간 완전무장 강하 1회가 끝났다.
마지막 강하를 마치고 땅을 밟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죽지 않았다는 안도감인지, 끝났다는 허탈감인지 알 수 없었다.
특전하사관후보생(특하후) 114기는 공수교육 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전원이 수료했다.
그날 밤 교관이 우리를 집합시켰다.
아무 말 없이 상자를 열었다.
검은 베레모가 나왔다.
3개월 동안 교관들이 쓰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
꿈에서도 여러 번 보았던 그 색깔.
손에 잡히는 순간, 천 조각인데도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 3개월의 시간이 이 손바닥 위에 올라온 것 같았다.
영하의 눈밭, 알몸 팔 벌려 높이뛰기, 앞꿈치 무릎을 외치다 쉬어버린 목, 그린라이트를 바라보며 빌었던 기도.
다 이 모자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구대장이 베레모를 나누어 주며,
"내일 임관식에서 눈물을 보이는 놈은 휴가 복귀해서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협박 아닌 겁을 주었다.
그날 밤, 생활관은 환호와 뜨거운 전우애로 한바탕 시끌버끌했다.
막사가 조용해진 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이면 이 모자를 쓰고 어머니 앞에 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동기들이 콧노래를 불렀다.
베레모 각을 잡고, 군복을 가장 반듯하게 다리고, 군화를 가장 빛나게 닦았다.
평소 훈련복만 입던 동기들이 임관식복으로 갈아입으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당 외부에 '공수특전하사관 114기 임관식'이라는 현수막 앞에 섰을 때,
나는 이게 현실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가족들이 보였다.
똑같은 군복, 똑같은 베레모 쓴 200명의 아들이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어머니들은 한눈에 아들들을 찾아오셨다.
나는 집이 울산이라 어머니께서 오시기 어려웠다.
그래서 38번 동기의 어머니께서 좌측 어깨에 하사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
행사의 마지막은 '검은 베레모' 군가 합창이었다.
"보아라 장한모습 검은 베레모, 무쇠 같은 우리와 누가 맞서랴…"
"안되면 되게 하라 특전부대 용사들 아~아 검은 베레 무적의 사나이"
3개월 동안 몇백 번을 불렀던 군가인데 그날은 달랐다.
목이 메도 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동기들도 같이 목이 메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부모님께 큰 절을 드리고 신고를 올렸다.
"신고합니다. 하사 김상호는 1998년 2월 28일부로 하사임용을 명 받았습니다."
그냥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고생한 아들을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서 다시 아기다 된 것 같았다.
아버지가 어깨를 감싸며 고생했다고 하셨다.
그 짧은 한마디가 3개월 치의 고생을 다 녹여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자 하나가 심어준 것은 자부심만이 아니었다.
어떤 믿음이었다.
이 훈련을 버텼으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이 조직이 나를 단련시켰으니 이 조직을 믿어도 된다는 믿음.
그날 밤의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이 모자를 쓰게 될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걸 쓸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그 믿음이 흔들리는 날이 오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