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전사의 꽃, 공수교육
하늘에서 뛰어내린 적이 있는가.
바람이 몸을 때리고, 아무것도 잡을 곳이 없는 허공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용기가 아니었다.
몸에 새겨진 열 글자가 전부였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단풍하사 계급장을 달았지만, 감격할 틈은 없었다.
특수전훈련의 꽃, 공수교육이 코앞이었다.
신병교육 때부터 마의 껄떡 고개를 구보로 뛰어오르면 저 멀리 공수교육처 건물에 큰 글자로
"이곳을 거친 자여, 조국은 너를 믿노라"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멋진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달리 읽혔다.
하나둘 포기하고 떠나는 동기들을 볼 때마다, 그 문구는 '나약한 자여, 어서 떠나라'로 보였다.
공수교육 교관들은 전사 그 자체였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 굳게 다문 입술 누가 봐도 범접할 수 없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파란 모자, 파란 옷을 입고 있어, 우리는 그들을 스머프라 불렀다.
만화에서는 가가멜이 스머프를 괴롭히지만 현실은 정반대, 스머프가 우리를 괴롭혔다.
1998년 2월, 유난히 눈이 많았다.
영하 10도에 속옷 위 전투복 한 벌로 하루를 버텼다.
눈 오는 날이면 상의 탈의 명령이 떨어졌고, 알몸으로 훈련장 눈을 녹여야 했다.
체력단련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교관은 잘하면 빨리 끝내준다고 했지만, 끝은 교관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어느 날은 팔 벌려 높이뛰기로만 오전을 보냈다.
구호 대신 산수를 시켰기 때문이다.
"교관이 5개, 여러분이 13개, 더하기 시작!"
앞줄은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열 끝은 웅웅거리는 소리만 닿았다.
18개만 해야 하는데 20개를 하는 동기, 17개에서 멈추는 동기.
엉망이 되면 교관이 소리쳤다.
"5분 코스!" 선착순이었다.
200명을 1명씩 끊어 돌리면 꼴등은 200번을 뛰어야 했다.
그렇다고 1등으로 들어와도 선착순이 끝날 때까지 계속 팔 벌려 높이뛰기를 해야 했다.
2주 차부터 지상교육이 시작되었다.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다섯 글자.
'앞꿈치 무릎'
낙하산이 펴지고 지면에 닿는 순간, 앞꿈치부터 접지해 종아리 외측, 무릎, 엉덩이를 거쳐 반대쪽 어깨까지 순서대로 닿아야 충격이 분산된다.
이걸 3주 동안 반복했다.
몇 번을 외쳤는지, 목이 쉬어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험을 태나어나서 처음 경험했다.
공중동작의 핵심도 몸에 박혔다.
'일만이만삼만 산개검사'
비행기 기체 이탈 후 낙하산이 제대로 펴졌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낙하산이 꼬이거나 미개방되면 주 낙하산을 버리고 예비 낙하산을 개방해야 한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절차였기에 무의식 중에 나올 때까지 반복했다.
11미터 막타워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은 공포 그 자체였다.
8명이 하네스를 착용하고 올라가 좌우 4명씩 동시에 뛰어내린다.
하네스에 매달린 채 약 100미터를 공중에서 버티며 산개검사부터 예비 낙하산 개방까지 일련의 절차를 수행해야 했다.
처음 뛰었을 때 무서워서 입이 열리지 않았다. 소리를 못 내면 얼차려가 기다렸고, 그다음부터는 겨우 소리가 나왔다.
몸은 만신창이였지만 밤이면 생활관에서 동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새벽마다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잠꼬대였다.
"일만이만삼만 산개검사!" 처음엔 놀라 잠이 깼지만 나중엔 무덤덤해졌다.
아마 나도 외쳤을지 모른다.
4주 차, 드디어 진짜 비행기를 탈 날이 왔다.
이번 주 강하만 무사히 마치면 하사 임관과 함께 짧은 휴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에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버스에 올랐다.
성남비행장 격납고 앞에 C-130H 수송기가 웅장한 몸체를 드러냈다.
생애 첫 비행기였는데 스튜어디스 대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스머프 교관이 고함을 질렀다.
엔진 굉음 속에 대화는 불가능했고, 교관의 손짓과 입 모양에만 집중했다.
일정 고도에 도달하면 비행기의 양쪽 문이 열리며, 바람과 함께 엔진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모든 훈련생이 강하조장의 손끝에 집중한다. 손가락을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동작이 '일어섯'이다.
두 손을 귀에 대면 개인별 장비 점검을 하고 앞사람에게 이상 없을 알리는 '장비검사'였다.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면 주 낙하산 고리를 기내 고정줄에 결착하라는 '고리걸어'였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문 옆에 붙어 있는 라이트를 바라보며 침묵이 내렸다.
그땐 큰 엔진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긴장감과 압박감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을 소환했다.
무사히 땅에 닿게 해달라고.
그린라이트 불이 들어왔다.
1번 강하자가 주저 없이 비행기 기체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 뒤로 줄줄이 문 밖으로 사라졌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을 때, 나도 이미 뛰어내리고 있었다.
'일만이만삼만 산개검사'
고개를 들어 보니 낙하산이 이쁘게 펼쳐져 나를 잡아주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을 잠시 느꼈다. 잠시뿐이었다.
지면에 발이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앞꿈치 무릎'을 외치며 착지했다.
살았다.
누워서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았다. 뼈가 온전하다.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공포를 이긴 건 용기가 아니었다.
반복 훈련이었다.
몸에 새긴 반복 훈련이 공포보다 먼저 작동한 것이다.
'일만 이만 삼만 산개검사' 열 글자가 나를 살렸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묻게 된다.
반복으로 몸에 새긴 것이 '생존 절차'였을 때는 나를 살렸다.
그런데 몸에 새겨진 것이 '무조건적 복종'이라면? 그것도 나를 살리는 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걸까.
그때는 그런 질문을 할 줄 몰랐다.
낙하산이 나를 안전하게 내려놓았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스템을 믿는 게 당연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