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첫 훈련, ATT

복종은 언제 몸에 새겨지는 걸까.

by 설계자K

복종은 언제 몸에 새겨지는 걸까.

명령을 따르는 게 익숙해지는 순간, 나는 그것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묻고 싶어진다.

그때 그 믿음은 과연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만들어진 것이었을까.


임관 후 달콤한 휴가가 끝나자마자 특수전학교로 들어갔다.

3개월 동안 실전에서 쓸 특수전학을 배웠다.

화기, 폭파, 통신, 의무. 주특기가 배정되던 날, 나는 통신을 받았다.

다들 가장 꺼리는 주특기였다. 전투 중에도 무전기는 꺼지면 안 됐다.

교신이 끊기는 순간 중대 전체가 눈먼 조직이 됐다.

AM 무전기 P-950K가 등에 달라붙는 순간, 그 무게가 앞으로 내가 짊어질 책임의 무게라는 걸 알았다.


3개월 교육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다.

특전사령부 예하 제9공수특전여단 53특전대대 독거미 중대.

신병교육대의 긴장감 대신 일상의 무게가 있었다.

중대원은 중대장, 부중대장을 중심으로 화기, 폭파, 통신, 의무로 나뉘어 있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나는 그 자리 중 통신 막내였다.


자대배치 첫날 큰 사수가 나를 불러 앉혔다.

입대 전 복싱선수였다는 그분은 가슴에 수술 자국이 있었다.

당신은 기척 없이 주먹을 날렸고,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눈 감으면 안 돼. 죽는다."

그게 첫 번째 가르침이었다.

그 뒤로 매일 아침 눈을 뜨게 하고 손가락으로 동공을 건드리는, 훈련인지 가혹행위인지 모를 반복이 계속되었다. 눈물이 났지만 눈을 감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자대배치 후 채 적응할 틈도 없이 부대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대종합전술훈련, 일명 ATT. 특전사령부 주관으로 다른 여단 대대와 쌍방교전을 벌이는 평가였다.

대대장 임기 중 딱 한 번 실시하는 훈련으로, 사실상 대대장의 능력을 평가받는 자리였다. 누군가 말했다.

"특전사 훈련 중에 ATT가 제일 힘들어."

100일 동안 준비했다.

산 7~8부 능선을 타며 길을 만들고, 통신장비 P-950K로 암호화 전문을 보내고, 야간 침투를 반복했다.

훈련이 훈련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어느덧 100일이 지났고, 마침내 평가 당일이 됐다.


새벽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다.

스피커에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DEFCON-Ⅲ 발령. 부대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각자의 군장을 꾸리고 60트럭에 올라탔다. 격리지역에서 최신화된 첩보를 받고 임무를 최종 확인했다.

격리지역은 혹여 포로가 됐을 때 다른 중대의 임무를 누설하지 못하도록 중대별로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었다.

발진기지로 이동해 낙하산과 산악복을 수령했다. 총과 군장을 지고 C-130H에 몸을 실었다.

나는 통신 임무를 맡고 있었다. 무전기 P-999K가 등에 달라붙었다.

비행기 안은 어둡고 시끄러웠다. 옆자리 동기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고, 그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강하가 시작되었다.

경기도 이천 일대가 적지가 됐다. 우리는 그 속에서 정찰감시 임무를 부여받았다.

2차 집결지로 이동해 군장을 은닉하고, 한 도로를 36시간 동안 감시했다.

평가관이 지휘조 옆에 붙어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다. 덥다고 베레모를 벗을 수 없었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다. 항상 사주경계였다.

36시간이 지나자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앉으면 곧바로 눈이 감겼다.

1차 임무가 끝나고 2차 타격임무가 왔다. 3조가 송신탑으로 접근해 폭탄을 설치하고 폭파했다.

선임하사님이 말씀하셨다.

"특전사는 폼생폼사가 아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생존하는 것이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각인됐다. 화려함이 아니라 생존. 그게 특전사의 본질이라고 했다.


마지막 차단임무가 무전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좌표를 받고 급속행군으로 4차 집결지에 도착했다. 훈련 60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중대장이 돌아가며 짧게 가면을 취하라 했지만, 나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내가 자면 무전기가 울려도 모를 것 같았다. 3일 밤이 지나고 4일 아침이 됐다.

차단 1조가 뷰비트랩을 설치했다. 차단 2조가 퇴로를 막았다. 크레모아 스위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수류탄에 손을 얹었다. 사격자세로 나뭇잎 하나 움직이지 않는 숲을 응시했다.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그때 무전기에서 소리가 났다.


"현시간부로 대대전술훈련평가 종료되었으니 모든 귀소는 집결지로 집합할 것."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4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오솔길에 모여 집결지로 향하는데,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평가 결과는 1998년 특전사령부 전술훈련평가 최우수 대대였다.

그날 저녁 점호 시간이었다. 부대로 복귀해 겨우 몸을 씻고 막사에 쓰러지려는데 비상이 걸렸다.

대대장이 15개 중대를 직접 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 중대 문이 열리자 그분이 들어섰다.

군복 그대로였다. 차렷이나 열중쉬어도 없었다. 서 있는 채로 한마디만 했다.

"다들 정말 고맙다."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4일 치의 피로가 그 말 한마디에 다 녹아버렸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떤 임무도 해낼 수 있겠다.

나의 특전사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4일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인내심이나 체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복종의 감각이었다. 명령이 떨어지면 의심 없이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 감각.

60시간을 버티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이 명령했고, 조직이 그것을 요구했고, 나는 그것을 수행했다.

복종이 체화될수록 하나의 질문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이 명령은 옳은가?'

그 질문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대대전술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하던 새벽, 동료들의 얼굴이 달빛에 잠겨 있었다.

모두 지쳐 있었고, 모두 뿌듯해 보였다. 나도 그랬다.

그때 나는 이 조직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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