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을 타고 제주도에 가본 사람이 있을까.
비행기도 아니고, 여객선도 아니고, 해군 LST 수송함이다.
갑판에서 서해 석양을 보며 제주도로 향한다는 건, 특전사가 아니면 평생 경험할 일이 없다.
나는 그 배를 탔다. 스물 한 살, 어느 날.
1999년 5월, 대대에 제주도 종합전술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제13공수특전여단(당시 청남대 경호 임무 수행)을 제외한 특수여단별 대대들이 한 달씩 제주도에 상주하며 전술훈련하는 방식이었다.
제주도는 섬이라 유사 시 즉각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로 특전사 1개 대대가 방어를 맡았다. 당시 제주도는 제주방어사령부가 있었으나, 해병 1개 대대뿐이었다.
훈련으로 제주도에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공중침투, 아니면 해상침투였다.
다들 비행기로 강하를 원했지만(한시간이면 가고, 제주는 바람이 많이 불어 강하보다 제주공항 착륙이 많았다.) 결국 해상침투로 결정되었다.
인천항에서 해군 LST 수송함에 몸을 싣고 16시간을 항해했다.
LST함 갑판에서 서해의 석양을 처음 보았다. 붉은 빛이 수평선 너머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다들 넋을 놓고 바라봤다. 잠시나마 훈련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LST 수송함의 객실은 닭장을 연상시켰다. 침대 높이 간격이 50cm도 안 됐다.
무심코 일어나면 얼굴이 위 침대에 부딪혔다. 좁은 복도에서 선임을 만나면 거수경례조차 불편했다.
이런 불편함을 매일 견디며 생활하는 해군에게 새삼 경의를 표했다.
200명이 넘는 인원의 식사는 식당이 좁아 갑판에서 해결했다. 염분이 섞인 습한 바람이 밥 위로 내려앉았다. 밤새 디젤 엔진 소음이 선체를 울렸고, 멀미로 괴로워하는 선임들 사이에서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디젤 소음은 고요한 밤 바다에서 무지막지한 자장가처럼 울렸다.
다음날 아침, 제주 함덕해수욕장 3km 앞 해상에서 LST가 멈췄다.
고무보트에 바람을 넣고 선수 램프로 나갔다. 파고가 높았다. 1중대가 먼저 램프를 빠져나갔다.
선임들이 보트를 잡아주고, 중대원이 모두 타면 아웃모터 시동을 걸어 굉음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신속히 이탈하는 방식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저게 뒤집히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때 파고가 더 높아졌다.
LST 램프가 올라오며 '철컹' 소리를 냈다.
나머지 병력은 제주항으로 입항했다. 해상침투는 그렇게 끝났다.
트럭을 타고 함덕해수욕장으로 이동해서 육상침투가 시작되었다.
3주간의 야외 전술훈련이 시작됐다.
1차 은거지는 1100번 도로 인근 산속 낡은 창고였다. 감귤이 노랗게 익어 매달린 제주 전통 가옥 마당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창고 안에 살림살이가 그대로 널려 있었다. 대대본부에 도착 무전을 날리고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물을 떠야했다. 지도에 없는 작은 폭포를 발견해 물을 보충 받았다. 그런데 폭포에서 밤마다 징과 북소리가 들렸다. 들어보니 굿소리가 울려왔다. 처음엔 시끄럽고 기묘했다. 다음날 선임들이 물을 보충하러 갔다 사탕을 가지고 왔다. 아기동자 굿이라 사탕이 많다고 했다. 낮에는 그 폭포에서 몰래 등목도 했다. 대대장에게 발각되면 군장구보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땀에 절은 몸이 물을 이기지 못했다.
한번은 정찰 임무 중 무전이 왔다.
"민간인 5명 계곡 이동 중."
이 깊은 산속에 누가 온단 말인가. 순식간에 군장과 소총, 반합을 모두 치웠다.
들어온 건 강릉대 동충하초 연구팀이었다.
그들은 락앤락 통에서 곤충 등에 자란 버섯 같은 것을 꺼내 내밀었다.
"특전사 여러분은 몸이 튼튼해야 하니 드셔보세요. 귀한겁니다."
선임하사가 지렁이 등에 붙은 것을 먹었다. 나는 작은 곤충 등에 포자처럼 달린 것을 씹어 삼켰다.
이미 식물에 가까운 상태였다. 씹히는 느낌이 풀줄기 같았다.
연구팀은 "이거 한 뿌리에 몇십만 원 합니다"라고 했다. 그 말에 다들 한 번씩 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3주간의 한라산 생활을 마무리하고 상주막사로 이동했다.
텐트 없이 자도 됐다. 수통 하나로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됐다. 물티슈 한 장으로 온몸을 닦지 않아도 됐다.
매일 불을 피워 밥을 하지 않아도 됐다. 끝없는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 같았다.
며칠 뒤, 한라산 등반이 있었다.
관음사 코스. 국립공원 측에서 자갈이 담긴 10kg짜리 가방을 하나씩 줬다.
한라산이 매년 낮아지고 있으니 정상에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선임들은 두 개씩 받아 들고 올라갔다. 좋은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등산로에서 그 무게는 꽤 달랐다. 태어나서 처음 오르는 한라산이었다.
기암절벽 사이로 이름 모를 식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피로를 잊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백록담에 도착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암절벽, 처음 보는 식물들. 바람이 세게 불었고, 구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발밑에 백록담이 펼쳐졌다. 제주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난 3주 동안 그 어딘가에서 군장을 지고 땀을 흘렸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다.
검은 베레모를 쓴 스물한 살이,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바라봤다.
한 달이 지나 부대로 복귀하던 날, 제주 하늘이 맑았다.
제주도를 떠나면서 창밖으로 한라산을 한 번 더 봤다. 저 산 어딘가에 3주 치의 땀이 스며 있었다.
군생활 동안 제주도에 두 달 살았는데도 지금도 또 가고 싶은 이유가 뭘까.
아마도 20대의 내가 느꼈던 자연의 소중함, 나의 땀과 비전에 대한 소중함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고통을 함께 버텼던 동료들, 낯선 땅에서 쌓은 전우애. 그것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 진짜가 어느 순간 나를 더 깊이 조직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키는 것과 복종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 나는 그 둘을 오랫동안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