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긴급구호대 국제구조대 소집(3회)
과거의 추억 소환 후 언론의 분위기는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었다.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둘째 딸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고,
간식 먹이고 정신없이 바빠서 지진에 대해 잠시 잊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두 딸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식탁 위에 놓아둔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느껴지자 둘째 딸이 벌떡 일어나 가져다줬다.
문자를 확인해 보니 ‘튀르키예 지진 발생 관련 긴급공지’였다.
문자를 보고 곧 국제구조대 인력풀 대원이 소집될 것을 직감했다.
내일 당번 근무를 위해 오후 10시 10분께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 알람을 오전 6시로 설정했다.
카카오톡 알람 차단 기능도 설정돼 있는지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아침 6시 기상은 직업군인으로 살아오면서 변하지 않는 내 습관 중 하나다.
눈을 감고 얼마나 잠을 잤는지 모르겠지만
침대 옆 협탁에서 미세한 휴대전화 진동이 귀를 통해 달팽이관을 자극했다.
그리고 문자가 왔다는 신호가 뇌로 전달됐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휴대전화를 잡아 화면을 두 번 터치했다.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화면의 밝은 빛이 동공을 자극했다.
시계는 00시 51분이었다.
휴대전화 문자 아이콘을 클릭하니 한 통의 새로운 문자가 보였다.
이어서 오전 2시 1분, 2시 3분, 4시 5분에 동일 문자가 계속 휴대전화 진동으로 감지됐다.
국제업무담당자가 새벽에 국제구조대 인력풀 61명 모두에게 전화할 수 없는 상황이니
문자로 먼저 상황을 알리고 있는 듯했다.
새벽부터 울리는 문자 진동에 잠을 깊게 청하지 못하고 뜬눈으로 앞으로 진행될 일에 대해 생각해 봤다.
당분간은 지금처럼 평온한 일상을 누리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5시가 넘으니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무의미했다.
일어나 책상 앞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간단한 쪽지를 남겼다.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과 내가 없는 동안 빈자리에 대한 당부였다.
쪽지를 어디에 두고 갈지 고민하다
혹시 출동이 취소돼 다시 돌아오면 괜한 소리를 한 거 같아 연습장 뒷장에 넣어 뒀다.
책상을 정리하고 옷방에서 양말, 속옷, 세면도구까지 출동에 필요한 개인 물품을 모두 챙겼다.
오늘 출근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갈 생각으로 안방에 들어가 휴대전화 불빛으로 잠자는 아내와 두 딸의 얼굴을 봤다.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내 삶의 전부인 사랑하는 가족이다.
‘혹시나 다시 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잠자는 아내와 아이들을 깨워 인사하고 싶었지만
출발 전부터 걱정을 주고 싶진 않았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국제구조대를 소집시켜 놓고 대기만 하다가
취소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솔직히 이번에도 비슷한 경우가 될 확률이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운전대를 한 손으로 잡고 문자를 확인했다.
문자를 보자마자 이번엔 꼭 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족과 인사도 못 하고 온 게 후회됐다.
센터에 도착하니 전날 당번팀 근무자 중 함께 국제출동을 갈 후배가
차고에서 출동 시 준비해야 할 개인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나도 개인장비 가방을 꺼내 목록에 포함된 카라비너와 개인 출동 배낭, 안전벨트, 귀마개, 방한복,
속옷, 구조화, 안전화, 출동 조끼, 보호안경, 기동복, 방화복을 챙겼다.
그리고 사무실로 올라가 내가 진행 중이던 업무들을 동료들에게 인계했다.
충청강원119특수구조대에서 함께 국제출동하는 직원들과 이른 점심을 식당에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료들은 “무사히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줬다.
아침까지는 ‘설마 갈까’였는데 진짜 가게 됐다.
센터에 개인장비와 물품을 넣은 캐리어와 개인 가방을 챙기고 충청강원119특수구조대 버스에 올랐다.
집합 장소인 수도권119특수구조대까진 대략 2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큰일이 닥치면 모든 게 새롭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3년 전 처음 국제구조대 인력풀에 지원할 때 어떤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퇴직할 때까지 국제출동 한 번이나 나갈지 모르겠다”
근데 그 시간이 너무 빨리 온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네이버와 구글 검색창에 ‘튀르키예 지진’이라는 문장을 계속 검색했다.
전 세계 모든 언론에서 튀르키예 지진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동영상에는 건물이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유튜브에서 실시간 영상을 보니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는 마치 폭탄이 떨어진 전쟁터와 같았다.
재난이 아닌 재앙이었다.
광범위한 지역에 건물들이 팬케이크처럼 무너져 내렸다.
2022년 발생한 광주 아이파크아파트 붕괴 현장과 유사했지만
피해의 참혹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
지진 발생 24시간이 경과 된 시점에서 사망자가 3천600여 명 예상이라면
앞으로 사망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란 게 자명했다.
재난 초기 광범위한 지진 현장에서 정확한 사망자와 피해자 수를 집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진 피해지역에 대략 몇 명이 거주하고 그중 몇 %가 집 안에 있었을까.
그리고 생존자는 과연 몇 %일까’ 상상조차 어려웠다.
오만가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버스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한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중앙119구조본부의 모체인 수도권119특수구조대에 도착하니
국제출동 인원들과 출동 준비를 도와주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출동이 점점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인사 나눌 시간도 없이 개인장비 가방을 들고 강당으로 이동했다.
곧이어 영남대와 호남119특수구조대 국제구조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강당에는 국제업무담당자가 지금까지 수집된 튀르키예 지진 상황과
향후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까지 수집된 정보는 언론을 통해 전파된 내용과 비슷했다.
외교부를 포함해 모든 정보 라인을 가동하고 있었지만 더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브리핑이 종료되고 잠시 강당을 나가보니
벌써 기자들이 몰려와 우리의 행동과 현재 상황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인천 KDRT 물류창고에 보관된 출동 물품이 도착했다.
국제구조대 출동복(주황색)을 포함해 많은 물품을 강당으로 옮기고 나서 대원들에게 지급했다.
국내에서 입는 소방 기동복을 벗고 해외긴급구호대 주황색 기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 이제 진짜 출동하는구나!’
생각이 확실해졌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안일 못 도와줘서 미안해”(14개월 된 둘째 아이가 있어 집안일이 많았는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몸 조심히 다녀와”
“역시 소방관의 아내야”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이들 얼굴이 보고 싶었지만 첫째는 학원, 둘째는 어린이집에 가 있었다.
아내도 아이들을 못 보고 보낸 게 마음에 걸리는지 공항에서 꼭 전화를 달라고 당부했다.
2월의 겨울바람은 출동대원들의 비장함을 알 듯 우리의 볼과 코끝은 시리게 했다.
국제구조대 61명의 출정식은 수도권119특수구조대 현관에서 진행됐다.
조인재 중앙119구조본부장이 이번 국제구조대의 구조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내부적으로 수도권119특수구조대장이 구조대장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으나
외교부를 포함해 모든 기관장의 직급이 격상됐다.
그만큼 이번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의 의미와 무게가 느껴졌다.
출정식에서 조인재 본부장은 “생존자 구조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안전이 확보된 상황에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출발할 때 인원들이 무사히 함께 복귀하는 게 목표입니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 있던 61명도 같은 마음이었다.
출정식이 끝난 후 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해외긴급구호대 파견은 민간 항공기가 아닌 공군 수송기로 결정됐다는 얘기가 들렸다.
버스에서 대원들끼리 “뭐야, C-130을 타고 그 먼 곳을 간다고? 하루는 걸리겠다.
가면 끝나겠다” 등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보탰다.
특전사 시절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침투하는 훈련을 받았지만 그리 빠른 비행기는 아닌 것으로 기억됐다.
버스가 이동하는 동안 잠시 수송기 이야기로 버스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그 떠들썩한 분위기는 곧 정리됐다.
공군에서 새로 도입한 공중급유기(KC330, 에어버스社)를 타고 가는 게 확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석양을 보며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공군 물류 대행업체에 도착했다.
새벽에 소집된 물류반 인원들이 KDRT 물류창고에서 출동장비를 포장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버스로 이동한 대원들은 개인별 출동 장비 가방을 내리고 개인 가방만 휴대한 후
다시 버스에 탑승해 인천공항 제 1터미널로 이동했다.
(물류반 대원들이 출동장비와 개인 출동 장비 가방을 모두 포장ㆍ확인 후 공항으로 이동해 함께 출동했다)
2월의 낮은 너무 짧았다.
이동하는 길에 벌써 어둠이 내려 우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마치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제 1터미널 10번 게이트에 도착해 개인 가방을 챙기고 내려 공항 내부로 들어섰다.
저녁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이 없었지만
구조대원들의 주황색 물결을 보고 공항 터미널 내부에 있는 관광객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 시선에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건강하게 다녀오세요”, “파이팅” 등 응원의 말을 건넸다.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문구로 답을 했다.
아침부터 출동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점심은 먹었지만 뭘 먹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저녁 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 공항에 도착했지만 누구 하나 허기진 기색은 없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오후 9시까지 10번 게이트 앞으로 다시 집합하라는 내용이 전달됐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니 배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식당을 찾았다.
친한 형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달콤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형님, 이제 진짜 가는 거 같은데요”
“아직 몰라. 수송기가 이륙해야 가는 거지”
“설마, 뉴스까지 나왔는데 안갈까”
“그런가”
“하하하”(이 웃음이 복귀할 때까지 가장 큰 웃음이었다.)
여러 번 국제출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일사천리 진행되는 지금 상황에 정신이 없었다.
운영반에서는 출국 전 GDACS VOSOCC에서 튀르키예 정보를 계속 수집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출동한다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
Survey123 애플리케이션 Team Fact Sheet를 작성했다.
국제사회에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튀르키예 지진 대응을 위해 출발한다는 내용을 담는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아이디는 ‘KDRT’이다.
공식적인 대한민국의 팀이름은 ‘KOR-01’이다
(Team name KOR-01 ~ 09까지는 정부 조직으로 등급 분류 평가를 받아 Heavy 등급을 보유한
조직이나 기관에 부여된다. Team name KOR-10부터는 정부 조직
또는 NGO단체로 등급 분류 평가를 받았지만
Middle, Light 등급을 획득했거나 평가를 받지 않은 조직이나 기관에 부여된다).
출국 전 최신화된 ICMS 화면 정보가 공유됐다.
ICMS Dashboard에는 튀르키예 지진 지역에 UCC와 SCC가 표시돼 있었다.
그리고 나라별 구조대 현황과 작업 위치, 생존자 구조 현황, 사망자 현황ㆍ좌표 등이 함께 보였다.
이 프로그램의 일부 현황은 현장 구조대원들에 의해 입력되기 때문에
구조작업의 시간과 성격에 따라 자료의 최신화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표시되는 현황이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도는 높아진다.
모든 구조 활동이 종료되면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UN에서는 튀르키예 지진 대응에 투입된 나라별
구조대 현황이나 생존자 수, 사망자 수, 동원된 물자 등 자료를 확보해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