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가로막힌 당신을 위한 초대
(천국의 전화번호는? 1000-9191. 믿음의 비밀번호는? 아멘)
당신은 '기독교'라는 말을 들을 때 숨이 턱 막히는가? 어쩌면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강요, 상식을 외면한 고집, 혹은 뉴스 속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보자. 당신이 믿음에 다가서지 못하는 것은 교리가 어려워서가 아니다. '믿는다면서 사랑이 없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 때문이다. '부모의 위선'에 다쳤고, '교회의 이기심'에 실망해,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사람에게 실망했다는 이유로, 당신의 영원한 미래까지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선택이다. 기독교의 기준은 '실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변함없는 예수'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만, 사람이라는 장벽을 잠시 치워두고, 그 본질 앞에 서 보자.
1. 당신은 이미 24시간 믿음으로 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믿음을 '비이성적인 맹신'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당신은 이미 믿음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믿음의 천재'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설계 도면을 검사하는가? 추락하지 않을 것을 '믿고', 그냥 몸을 맡긴다.
•알람을 맞추고 잠들 때, 기계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고' 눈을 감는다.
•버스에 올라타며 기사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묻지 않는다.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데려다줄 것을 '믿고', 자리에 앉는다.
•의사가 준 약이 독약이 아닐 것을 '믿고', 한 번에 삼킨다.
당신은 지극히 현실적인 '믿음' 속에서 매일을 산다. 기독교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당신에게 제안한다.
"당신이 매일 공기처럼 쓰고 있는 믿음의 시선을, 이제 시스템과 사람을 넘어, 예수에게로 넓혀보라."
이것은 새로운 능력을 장착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미 당신 안에 있는 믿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아라.'라는 초대이다.
2.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용기 있는 '한 걸음'이다
'다 증명되면 믿겠다.'라는 말은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가장 비현실적인 태도다. 당신은 인생에서 100% 확신하고 시작한 일이 단 하나라도 있는가?
•결혼; 상대의 모든 것을 분석해서 결혼하지 않는다. 함께 걸어가며 알아가겠다는 모험으로 시작한다. '다 이해하고 결혼하겠다'라는 사람은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
•수영; 물의 역학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뛰어들지 않는다. 일단 몸을 던져서 물에 뜨는 법을 배운다. 튜브만 붙잡고 있다면 10년이 지나도 수영을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5:7).
믿음은 모든 의문이 해소된 뒤에 찍는 마침표가 아니다. 의문을 품은 채로 내딛는 '첫 번째 발자국'이다. 사람을 믿듯, 시스템을 믿듯, 당신의 한 걸음을 예수에게 떼어보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고백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한 걸음은 내디뎌 보겠습니다."
그 한 걸음 끝에서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이 내디딘 바닥이 생각보다 안전하고, 생각보다 깊다는 것을. 무엇보다 신이 완전히 당신 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