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남는 인생
연초에 당신은 자연스럽게 '숫자'에 관심을 둔다. "올해 매출은? 목표는? 성과 지표는?" 그러나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당신을 붙잡는 질문은 전혀 다르다. "그래서.... 그 사람과 일하는 건 어땠어?"
기업은 '재무제표에 남는 숫자'를 성과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과 인생은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을 성과라고 말한다. 아무리 화려한 성과의 성탑을 쌓아 올려도 그 곁에서 사람이 떠나갔다면,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고립이다.
오늘, 단 하나의 질문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당신은 성과만 만드는 사람인가, 사람도 남기는 사람인가?"
1. 사람은 압박 속에서가 아니라, 안전 속에서 성과를 낸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명소로 꼽히는 금문교가 1933년 공사를 시작할 때, 세계 최고의 난공사로 불리던 건설 현장은 공포 그 자체였다. 거센 바람과 아찔한 높이에서 인부들은 매일 추락의 공포 속에서 일했다. 사고는 잦았고, 작업 속도와 성과는 바닥을 맴돌았다. 그때 책임자가 결단을 내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예산을 들여, 다리 아래 거대한 안전 그물망을 설치한 것이다. 사람들은 비웃었다. "다리를 지으라니까, 왜 그물을 치는가?"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그물이 설치되자 인부들의 마음이 안정되었고, 작업 속도는 무려 25%나 빨라졌다.
사람은 몰아붙일 때가 아니라 안전하다고 느낄 때, 자기 이상의 역량을 발휘한다. 비난보다 신뢰가 있을 때, 두려움보다 지지가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직장이나 공동체에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실수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붙잡아 주는 안전그물, 넘어질까 봐 움츠린 마음을 먼저 살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성과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2. 성과가 지나간 자리에는 사람이 남아야 한다
당신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일만 잘하면 됐지."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관계'라는 연료로 움직이는 존재다. 실력 있는 독불장군은 단기적인 성과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주변의 에너지를 소진한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상처다.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실력자는 다르다. 성과를 내면서도 주변을 세운다. 그가 머문 자리에는 이런 말이 남는다. "나도 저 사람처럼 일하고 싶다."
성경 속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갇힌 처지였다. 자기 인생만 생각해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요셉은 감옥에서 타인의 얼굴을 먼저 살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창세기 40:6~7)
이 질문 하나가 이집트 왕의 꿈 해석으로 이어지고, 한 나라를 살리는 역사로 확장되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개인에게는 총리의 자리로, 국가에는 민족의 생존으로 이어진 것이다.
진정한 성취는 당신 혼자 정상에 서는 것이 아니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다. 따라서 올해 당신과 내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이 그들에게 축복인가, 아니면 견뎌야 할 고역인가?"
올해 말, 당신과 나의 뒤에서 이런 고백이 들려오기를 소망한다.
"그 사람 덕분에 버텼어." "그 사람과 함께여서 가능했어."
이 고백이 남는 인생, 이것이 숫자를 넘어서는 진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