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번, 내 말 좀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olivia


"차 한 잔 할래?"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요, 다음에 마실게요"

충격적인 고백을 한 뒤로 한 달 반이 지나가는 시점에 차 한 잔도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대답을 듣고 부모님은 아마 서운했을 수도 있다.



거기서 끝났어도 되는데, 전화를 끊고 말하고 싶어졌다. 내가 어떻게 힘든지, 우울한지. 내가 우울하다고 하면 "그 정도도 못 이기냐" 라고 하거나 "나이가 몇인데 그런 것도 못 이겨내냐" 소리를 들을 것 같아서 잠시 고민됐지만 이번만큼은 말하기로 했다. 모자를 쓴 나를 칭찬했다. 하체 운동 잘 하고 런닝머신 타면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줄 누가 알았을까?



"말하면 가족들이 싫어할 거 같아서 말 안하려고 했는데... 병원 진단은 아니지만 제 마음이 힘들대요. 저 진짜 힘들어요. 그동안 참았던 게 한꺼번에 터졌어요. 전화 받는다고 제가 괜찮은게 아니에요. 괜찮지 않은데 걱정돼서 전화하는 거 알고, 계속 안 받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받은 거예요. 지금 누굴 만날 에너지가 없어요"



이 문자를 보낼 때, 나는 단 한 번만 내가 힘들다는 걸 상대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주길 바랐다. 나의 힘듦은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다. 정서적 자원은 늘 고갈상태였고, 처음으로 부모님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은 건 작년 추석이었다. 나는 그날 아빠의 눈물을 처음으로 봤다.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답장이 왔다.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크지만 표현은 정말 서투른 우리 아빠.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전에 느낀 답답함과는 달랐다. 전에는 '답답함과 억울함' 딱 거기서 끝났는데 이번에는 나도 '이해'라는 걸 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정말 표현이 서툴러서, 혹은 나랑 방식이 달라서 그게 안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이다.



나는 내 문자가 단순히 힘듦을 토로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상대가 알아주길 바랐다. 그리고 알아주길 바라는 이 마음이 단지 내 욕심에서 끝나지 않기를 마음으로 간절히 바랐다. 그 뒤에 10줄이 넘는 문자에는 내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는지, 아빠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담은 문자를 보냈다.



1시간이 지나서야 온 답장은 또다시 짧고 딱딱한 세 줄이었지만, 그 안에서 안도감을 읽었다. 나는 내 문자에서 단 한 번만, 내가 정말 힘들다는 걸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이번 한 번만 알아주면 다시는 알아달라고 하지 않을 다짐으로 보낸 문자였다. 심각성이 전달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한 번만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고 싶었던 말을 뱉었으니

조금 회복의 시간을 가지면

이제는 얼굴을 보고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 날을 상상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속에 머금은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