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건 내 옷이잖아

똑같은 재킷, 블라우스

by 산드리

아무래도 집에 갔다 오는 게 나을 듯하다. 부임 동기 아진이 내가 입은 것과 똑같은 재킷을 입고 출근한 것이다. 50여 명 되는 교직원, 그중 여교사는 20명 정도인데 그중 아진과 내가 같은 색깔과 디자인의 옷을 입고 출근한 것이다. 복도 맞은편을 걸어오는 아진을 멀리서 보고 불에 덴 듯한 통증을 전신으로 느꼈다. 내가 오늘 입은 재킷을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아진도 함께였다. 유행 타지 않는 기본 디자인에 윗주머니에 섬세한 자수 로고가 있어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오프 화이트 재킷을 사려고 할 때 아진은 극구 만류했다. 너무 창백해 보이고 때가 잘 타서 실용적이지 않으며 천연 리넨 섬유라 다림질이며 여타 관리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며 카드를 건네고 결재를 했었다. 그러던 아진이 하나도 다르지 않은 같은 옷을 입고 출근을 한 것이다. 공포영화의 카피캣도 아니고 저건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치밀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고 싶었으나 수업과 청소, 상담, 공문 처리 등 밀린 일을 하다 보니 쉽지 않았다. 교복은 학생들이 입는 것인데 유니폼도 아닌 사복을 같은 날 입는다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7교시는 독서 활동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준비해 와서 읽고 한 시간 동안 읽은 내용을 요약하여 일지를 기록한다. 아이들이 읽기에 집중하도록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책에 집중하는 것을 확인하고 회의실로 갔다. 회의 주제는 내신고사 출제에 따른 저작권 보호 교육이었다.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제집, 자습서의 문제를 원형 그대로 출제하지 말 것, 눈속임 식의 미세한 변형 등도 모두 저작권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시험 문제 출제 시 저작권에 위반하지 않는, 사용 허가된 폰트를 사용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수업 준비, 학생 생활지도, 특별활동 지도, 보직에 따른 공문처리 등 할 일이 산더미 같은 속에서 문제 출제까지 겸해야 하는 것이 부담이 컸다. 수업은 교사의 본업, 생활지도는 심리 상담사, 특별활동은 예능 지도, 공문처리는 사기업 회사원, 시험 문제 창작은 출판사 일처럼 느껴져 일인 다역의 저글링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날보다 오늘 퇴근은 유난히 큰 해방감을 주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 아진이 없는 공간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후로 다시는 오늘 입은 재킷을 입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날 출근하여 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보건실에 누워 있고 싶다는 아이들을 줄 세워 두고 보건실 입실증을 남발하고 있었다. 업무 메신저 알림이 떠서 확인해 보니 7교시 회의 안내였다. 연일 계속되는 회의.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회의 주제는 교복 디자인 변경이었다. 버버리 저작권 제기로 교복에서 버버리 체크무늬 사용불가 판정이 났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는 정확히 말해서 버버리 패턴이 아니라 의아했다. 그러나 체크 패턴이 이후 시비의 요소가 있으니 선제적으로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리라 짐작되었다.




저작권. 이전에 별 관심 없이 지내오던 일인데 최근 며칠 사이 내 주변에 많은 이슈가 저작권 관련이라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오늘은 내가 몇 년 간 작성한 공문, 각종 문서를 대상으로 폰트 저작권 위반 사항이 있는지 검사하여 수정을 해야 한다. 그다음 다가오는 기말고사 문제를 기존 출판 서적을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창의성을 발휘해서 창작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아진이 무엇을 입고 출근하는지 점검해야 한다. 며칠 전 재킷 외에도 블라우스도 내가 산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와 나를 혼비백산하게 만든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다행히도 나는 같은 옷을 입고 오지는 않았다.




디자인과 색상이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 물론 고의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 이렇게 불쾌하다면, 그 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이 도용당해 다른 상표를 달고 팔려나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주고 사는 일보다 도화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고 디자인 구상하고 디테일을 부여하고 섬유와 패턴을 고르는 일. 창작자의 시간과 아이디어를 모두 쏟아부은 분신을 도난당하는 것이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진을 보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을 그날 하루, 그 공간에서 삭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씨체든 평가 문제든 창작자의 권리를 생각한다면 업무가 많다 하더라도 대가 없이 빌려 썼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겠다 생각했다. 문서 수정 작업을 하는 시간들이 마냥 힘들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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