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할머니 국밥

by 산드리

엄마는 집에서 밥을 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국밥집에 와서 먹으라고 한다. 엄마도 할머니 식당에서 일한다. 식당까지는 걸어가도 되고 버스를 타고 두 구역을 가서 내려도 된다. 어릴 때는 식당에 가서 먹기도 했지만 그것도 자주 먹다 보니 지겨워서 김밥 같은 것을 사 먹을 때가 더 많다.


할머니가 하는 식당 옆에도 '원조 할머니 국밥' 집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도 원조 할머니 국밥집이 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이름의 국밥집이 많은지 의아했다.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한 50년 전에는 할머니 식당 한 곳뿐이었다. 할머니는 재료를 아끼지 않고 국밥을 만들었다. 뚝배기를 뜨겁게 데워 손님상에 내 가서 손님들이 마지막 한 숟가락을 먹을 때까지 국이 뜨거워 좋다고 하며 평이 좋았다. 식당이 손님으로 가득 차고 대기 손님이 줄을 설 정도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집 건물의 주인이 식당을 차렸다. 원래 그 자리는 부동산중개사무실이었다. 세입자와의 계약 만기가 되었을 때 건물주가 중개사에게 나가라고 하여 시끄러웠다. 중개사는 권리금을 받고 새로운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는데 주인은 자신이 건물을 팔았다고 하며 내쫓다시피 하여 가게를 비우게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국밥 식당을 했다. 우리나라는 자유국가다. 누구든 국밥집을 차릴 수 있다. 그러나 국밥집 옆에 또 국밥집, 게다가 간판도 '원조 할머니 국밥'으로 내걸었다. 할머니는 옆집 주인과 마주치면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하였다. 할머니는 싸울 때마다 "상도덕에 어긋나고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며 고장 난 어학학습기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도덕성이 없다고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엄마는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에서 법률 상담을 받기도 했다. 소송이니 재판이니 변호사니 하는 것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달나라 여행만큼 서먹할 뿐 아니라 몸에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할머니와 엄마는 소송 같은 것은 단념하고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입술을 앙다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도 나란히 세 집이 같은 간판을 걸고 장사를 한다. 심지어 가게 앞에 가마솥을 설치해 놓은 것까지 세 집 모두 똑같다. 물론 유명 연예인의 싸인과 덕담이 적힌 종이들로 도배된 것도 같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손님이 뜸할 때, 국밥 가마솥은 할머니 마음속에서 펄펄 끓는 듯이,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연신 찬물을 입 속으로 들이붓고는 한다.




오늘도 편의점 김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독서실로 갔다. 길게만 느껴지던 방학도 여름날 아이스크림 녹듯 줄어들어 시나브로 개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 유이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켜고 과제 파일을 열었다. 키보드와 백스페이스키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였다. 키보드 소리에 잠이 깬 유이가 부스스 일어나 뭐 하냐고 물었다.


"방학숙제해야지, 독서기록장 다 했어?"

"그걸 아직 하고 있어? 인터넷에 요약된 내용 베껴 쓰고 끝에 감상 몇 줄 적으면 돼. 게다가 챗지피티 활용하면 근사한 자료를 창작도 해줘. 요약 자료 몇 개 읽다 보면 내용 이해는 저절로 되는 거고. "

" 표절 검사기로 조사하면 어쩌려고?

" 걱정 마. 선생님이 그걸 언제 일일이 검사하겠어."

" 독서기록지는 수행평가 점수 반영되는데 점수 못 받으면 내신을 망칠 텐데."

" 대학 갈 마음도 없어. 대학 나온다고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 못 가면 김밥집이나 할래. 이름도 지어놨어. 우영우 김밥.

" 흠 멋진데? 그런데 그 상호도 네 마음대로 쓰면 법적으로 문제 될 수 있어. 드라마 작가나 드라마 제작 방송사에 상호로 사용해도 되는지 먼저 확인을 해야 할 거야."


유이는 내 말을 듣고는


"김밥집 차리기도 어렵네. 세상이 각박해, 사는 게 이렇게 복잡해서야"

하고 푸념을 하더니 편의점에 커피 사러 간다며 나갔다.


친구에게 싫은 소리를 하긴 했지만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도서 제목을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서점 홈페이지 사이트에 책 내용 요약과 목차, 블로거들의 도서 리뷰 등 관련 문서들이 수십 페이지가 넘게 검색되었다. 상단에 뜬 자료들을 참고한다면 노출도가 높아 베껴 쓴 것이 금방 들통날 것 같아 10페이지를 열어 자료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검색된 문서들의 수는 많았지만 사진과 이모티콘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은 되어 있었지만 내용이 알찬 자료들은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글을 쓴 사람은 다른데 내용이 비슷한 것도 많았다. '표절'이라는 단어를 검색어로 자료를 찾아보았다. 유명 인사들의 학위 논문 표절, 유명 가수들의 음원 표절 등에 관한 기사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 기사를 보니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가 대학원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표절율이 무려 30%로 조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표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인용 부호 넣는 것을 깜박했네요"


하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는 사진이 크게 나와 있었다. 표절율이 30%인데 큰따옴표 넣는 것을 잊었다고 답하는 것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동일한 작품을 감상하고 쓰는 도서 리뷰라지만 읽는 사람의 감상이 다 달라야 할 텐데 마치 드레스 코드를 사전에 공지하고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옷차림처럼 글의 내용이 비슷했다. 개성 없고 판에 박은 듯 유사한 여러 개의 리뷰를 읽고 이어 붙인 조각보 같은 리뷰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의 생각이 드러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어떤 작가가 책을 출판하기 전에 '내 글 또는 책이 나무를 벨만큼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쓰는 글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왜 시간과 종이를 낭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설비라인에서 제조된 수만 개의 로봇이 아니다. 살아있는, 지구상의 하나뿐인 '나'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이에게 교과서적인 설교를 하기는 했지만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을 양심의 가책 없이 무상으로 이용한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 무료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았던 일이다. 그때에는 불법 다운로드를 하면서도 죄책감보다는 용돈을 아낀다, 남보다 먼저 해적 행위가 가능한 사이트 정보를 알아냈다는 으쓱함 등 자기도취에 빠져 있었다. 저작자의 권리를 훔쳤다는 죄책감보다는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할머니와 엄마가 지금도 뜨거운 솥을 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실 '원조 할머니 국밥집'이 만화책의 한 페이지처럼 떠오른다. 우리 가족이 복사판 '원조 할머니 국밥집'의 피해자가 아니었다면 지식재산권, 저작권, 상표권 같은 말에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유이 말대로 취업도 어려운데 할머니 국밥집에서 맛의 비결을 전수받아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할머니의 식당은 '3대 원조 할머니 국밥'이 되는 것이다. 옆집과 그 옆집이 또다시 '3대'라는 단어까지 훔쳐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너무 멀리 간 걱정일까?


* 사진출처: 픽사베이 by jay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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