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등신 비너스가 나를 멸시한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by 그리다

제목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저자. 은희경

출판. 창비

표지 사진 출처 책 표지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왜인지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아 쇳가루가 자석에 끌려가듯 책을 뽑아 들었다

외모 자신감이 부족한 나의 내면을 표현한 것 같았다


주인공은 원하지 않는 존재로 태어났다는 자괴감을 안고 살아간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한 번 아버지를 만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이다

아버지가 데리고 간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게 된다

비너스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아버지가 뒤로 하고 있는 벽면의 비너스만 바라본다

-나-의 마음 한 편에는 과체중인 자신을 아버지가 어떻게 볼까 하고 마음을 졸인다

좀 더 멋진 아들로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 있으나 자신의 외모로는 그런 어필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속한 세상의 사람들은 레스토랑의 멋진 손님들, 은은한 배경 음악, 세련된 그릇과 은색 테이블웨어의 세상에 속한, 세련된 사람들이겠지 하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 아버지를 본 이후 -나-는 아버지를 본 일이 없다


과체중인 주인공-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흥미로웠다

- 뚱뚱한 꼬마였던 나는 뭔가 심술궂게 보였지만 단지 수줍은 것뿐이었다

- 아버지는 내가 뚱뚱한 아이라는 걸 가장 못마땅해했을 것 같았다

- 뚱뚱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섬세함과 감수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일종의 보상심리로 클래식 장르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 요즘은 뚱뚱한 사람을 게으르고 절제심이 없으며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 신발끈을 맬 때마다 변기에 앉았을 때처럼 얼굴이 뻘게지며 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방귀가 나와버릴까 봐 걱정하는 일

- 뚱뚱한 사람들은 인상이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간혹 엄청나게 못생기고 지저분한 뚱보에게 내가 주문한 음식을 날라다 주는 식당 아줌마

- B는 자기 중고차의 머플러가 나가버린 것을 순전히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네가 탈 때마다 차 바닥이 내려앉아서 과속방지턱을 겨우 넘는다는 건 너도 알지?

- 뚱뚱한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빅 사이즈 옷이나 체중계 같은 걸 고를 수 있다는 것은 인터넷 쇼핑의 중요한 장점이었다

- 택시 잡기가 쉬워진 것도 나를 태우기 싫어하는 운전기사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 맥도널드에서 내가 만약 샐러드만 먹고 있으면 부모들은 아이에게 속삭일 것이다. 뚱뚱해서 저렇게 조금만 먹는 거야

- 감자튀김에 더블사이즈 버거와 콜라를 먹고 있으면 저런 식으로 먹으니까 뚱뚱해지지,라는 눈빛을 서로 교환하며 웃음을 참다가......

- 뚱뚱한 사람은 몸집이 커서 눈에 잘 띄는 게 아니다. 뭔가 자신들과는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시선이 멈춰지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비만인 주인공의 내면을 경험했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아플 때 사람들은 신체의 장애가 있거나 항암 치료를 하는 환자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고 이웃과 혹은 낯선 이와 평화롭게 지내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고 생각한다


서른다섯 살이 된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기억조차 아련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는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아버지와의 만남을 준비하며 -나-는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날씬해진 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만다

아버지가 운명했다는 연락을 받고 조문을 간다

- 그러나 아버지는 뚱뚱한 아이의 기억을 갖고 떠나버렸다-라고 생각한다


제목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아버지가 속한 세계는 버려진 -나-에게 아름다움의 세계이며 뚱뚱하며 왜 태어났는지 원망하며 살아가는 - 나- 자신은 멸시의 대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조문을 간 상가에서 목격한 사람들 중 과체중인 이들이 여럿 보여 비만은 아버지의 유전자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버지가 속한 세상-이라는 미지의 대상으로부터 멸시받으며 그런 자괴감은 세상을 통과하며 더 크게 확대되어 -나-의 상처를 심화한다


우리 내면에는 어떤 이유로든 얼마만큼의 자괴감을 지니고 살아간다

내면보다 외적인 것, 정신보다는 물질적인 것, 윤리보다는 손익 계산이 우위를 차지하고 기세를 떨치는 현대는 더욱 외모 때문에 정신적 압박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비상식적으로 마른 몸매가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멀쩡한 부피와 질량을 가진 존재를 멸시하는 세상이 된 듯하다

잘못된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면 홀쭉이도 뚱뚱이도 평균이도 모두 불행하게 된다

그래서 인바디 테스트지의 -정상체중-판정을 확인하고 한탄하는 기이한 인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펄 벅의 <매혹>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말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금강석이나 부모에게 받은 유산처럼 자신이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자신의 노력 없이 얻은 것이라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의 노력 없이 얻은 것이라 넘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피부가 좋은 사람에게 비결을 물었을 때

추천 화장품이나, 클리닉, 자신만의 관리법을 알려주면 노력할 수 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예요라고 대답하면 듣는 나로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외모만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이야기할 때 잘생겼다고 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예전 글쓰기 교실에서 수업 마지막 시간에 소설가인 강사가 수강생의 글 중 한 편을 뽑아 소개했다.

작가는 내가 쓴 글을 선택하고 수업 중 낭독해 달라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 열람실 서가 사이를 돌며 책을 읽고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한 사람이 책꽂이 사이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지만 시선을 돌려 외면을 했다

그 사람이 책꽂이 사이를 돌아 내게 다가왔다

그는 보티첼리의 비너스만큼 아름다웠다

세수만 하고 다니는 내가 우연히라도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한 번도 서로 알은체를 한 적이 없고 얼핏 보아도 나와는 결이 다른 사람인 듯하여 시선을 외면했다

그는 화장, 헤어스타일, 패션, 네일 아트한 손. 디테일한 부분에서까지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누군가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우리 두 사람을 본다면 퀸 카와 존재감 없는 필부의 조합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다가온 퀸 카는 밝게 웃으며

- 발표하신 글 감동적으로 잘 들었어요- 하며 눈을 맞추고 감사 인사를 했다

외모에서 느꼈던 거리감과 높았던 벽이 광선 검의 빛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도 감사 인사를 하고 활짝 웃었다

비너스의 칭찬을 받으니 마음속으로부터 빛이 나오는 듯 기뻤다

낯 모르는 이를 칭찬할 줄 아는 비너스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내면의 친절함이 더하여 더욱 빛이 났다

저마다 가진 자원은 다르다

똑같은 하나의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하여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은희경 작가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 하나하나의 자아가 자신의 가진 것으로 빛나기를 바란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