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않고 만들기

새것 vs 오래된 것

by 그리다

제목 모쪼록, 간결하게

저자. 김혜형

출판. 마북

분량 314쪽

표지 사진 출처 책 표지



미니멀과 맥시멀

신상과 구형

구매하기와 재활용하기

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위 대립쌍 중 나의 취향은 미니멀, 구형. 재활용하기 쪽이다

미니멀 유행은 십여 년이 넘은 듯하나 아직도 꽤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념이다

서점에 미니멀 관련 책들이 모자라지 않게 꾸준히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미니멀은 단순한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데서 시작한다

집 실내를 단순하게, 차림도 단순하게를 추구하는 것이다

미니멀의 사이비 격으로 사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다면 외형은 미니멀이나 그 이면은 엄청난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맥시멀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물건을 가지게 된 동기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고 있다

책의 차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만들기, 그리기, 리폼하기, 물려받기, 선물 받기 등으로 나뉜다

당연히 새로 사서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것,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책상으로 싱크대를

책장을 옷장으로,

나무판자로 비둘기집과 우체통을,

헌 옷으로 발매트를,

조각천으로 마스크를

만드는 식이다


저자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황금손을 가진 사람이다

내 눈에는 마법의 손처럼 보인다

손으로 무엇이든 만들 수 있으니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사물이 세상에 하나뿐인 희귀템이라 할 수 있겠다

곰손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이다

책 읽기를 마치고 책표지 안쪽 면에 작가 소개를 다시 보게 된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의문과 함께.

저자는 출판 편집자로 밥벌이하다 농사짓고 글 쓰는 삶으로 이동했다-라고 소개되었다

출판 편집은 책을 만드는 총감독이라 할 수 있다면 그러한 직업적 능력이 손재주로 이어져 집을 짓고 옷을 짓고 소품을 짓고 생활을 뜨개질하는 능력과 맥이 통하는 일인가 보다

부러울 따름이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저자는 말한다

- 나는 '유행에 뒤처진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뒤처짐이란 앞서가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프레임이다

얼리어답터 눈에는 신상품에 무관심한 사람이 뒤처져 보이겠지만, 뒤따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길과 방향과 속도가 있는 법이다

각자가 바라보는 방향이 각자의 앞이니, 누가 앞이고 누가 뒤인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진행 방향에서 몸만 돌려도 앞과 뒤는 뒤바뀐다-


가르치던 학생들이 연예인 공항패션을 보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사는 것을 보고 연예인을 따라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고는 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성가신 잔소리일 뿐이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특정 가치관을 기준으로 줄 세우기에 너무나 열심이었던 듯하다

학업성적, 고소득 직종, 이상적 외모, 복식 스타일 등을 정하고 줄 세우기에 열을 올렸다


'나 좀 그냥 내버려 둬'라고 선언하고

내 갈 길 간다 하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미니멀, 혹은 적게 소유하기에 대한 짧은 글이나 책이 있으면 지나치지 않고 챙겨 읽었다

이유는 한 때의 유행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입력하여 몸에 밴 습관으로 굳히고 싶어서였다

반복 학습과 자기 세뇌로 많은 것들을 비워냈다

버리기, 나누기, 중고 거래하기 등의 방법을 활용했다

그 결과 집은 쾌적하고 넓어졌다

그러나 항상 무거움을 느끼며 살았다

문제는 마음과 머리 속이었다

마음과 머리도 미니멀이 필요하나 쉽지 않았다

오래전 테니스 레슨을 할 때 프로선수 출신의 코치가 늘 하던 말이 생각났다

-공 하나를 치는데 최선을 다 하라-고 했다

다음 공에 대한 생각을 지우라는 것이었다

이 공을 제대로 날려 보내지 않으면 다음 공은 없다는 것이다

내게 기회가 주어진 이 공을 제대로 쳐내지 못한다면 상대는 포인트로 득점을 내고 내게는 다음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테니스 경기를 위한 한 가지 조언일 수도 있지만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뭐가 있을까

늘 마음은 미래에 저당 잡히고 겨울이 숨죽이고 봄바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이 대지의 생명감을 놓치고 말 것이다

마른 나뭇가지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붉게 맺힌 움을 즐기지 못하고 변화 없는 생활은 무의미하게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모든 순간 멀티플레이를 하며 효율을 따지고 있는 한 많은 것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물건을 비우고 집안의 공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에 맞추어 머리도 버리기, 나누기, 거래하기로 분류하여 정리해 나가야겠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며 읽다 보니 마음 맞는 친구와 숲 속 카페에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눈 기분이다

봄맞이 대청소를 위한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오래된 물건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싶거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이 어떤 계기로 나와 만나게 되었나 생각하며 내 공간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다면 효과 만점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모쪼록 : 부사, 될 수 있는 한

간결하게 : 간단하면서 짜임새 있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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