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다

구병모 작가, 절창(切創)을 읽고

by 그리다

제목. 절창(切創)

저자. 구병모

출판. 문학동네

분량. 349쪽

표지 사진. 책 표지



미스터리 스릴러 느낌으로 읽었다

어떤 이는 로맨스 소설로 읽을 수도 있겠다

열린 결말로 끝이 나서 길게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첫 장을 다시 읽어보게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 아가씨와 문오언은 그들의 관계를 짐작할 만한 것은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주인공도 말을 하기는 하나 겉도는 느낌을 준다거나 변죽을 울리는 느낌이다

주인공의 심리도 추측을 해야 한다

독자는 읽으면서 나의 추측이 맞는지 계속 의문을 갖고 읽게 된다

정답 해설지를 잃어버린 수학 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독자는 베일에 가려진 장막 뒤에 존재하는 인물의 움직임을 그림자로 짐작하는 듯하다

화자는 독서 교사인 -나-와 아가씨의 독백 같은 이야기로 교차된다

-나-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관찰자라 독자는 주인공에 대해 짐작할 뿐이다






아가씨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의 베인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만지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보스인 오언이 필요할 때마다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 아가씨는 그 상처를 헤집으며 상처 입은 사람의 생각을 읽어서 알려준다



<상처가 깊고 광범위할수록...>

<생긴 지 얼마 안 된...... 그러니까 아물기 전일수록>

<무엇보다 치명상에 가까울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더라고>

라는 말을 하는 보스의 목소리는

<첼로의 C현에 활을 댄 듯한 음성이 평화로운 템포로 귓바퀴를 타고 미끄러져 들어와서 외이도의 그물망에 걸렸지만...>


이런 장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혹은 영화 <레옹>을 떠올리게 했다

극단적인 대비 때문이라고 할까

1Q84의 여주인공은 단정한 오피스걸처럼 보이지만 실수를 모르는 킬러이다

영화 레옹의 남자 주인공도 무자비한 킬러이지만 어린 여자 아이와 작은 화분을 끔찍하게도 귀하게 여기는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어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보스는 사람을 칼로 난자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사랑하고 직설적인 화법보다 문학적 표현을 구사하는 섬세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은 늘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로 말한다

거기에 더하여 목소리는 첼로의 C현이라니...

절창, 문학을 사랑하는 보스 오언

레옹, 식물을 기르는 킬러 레옹

1Q84, 직장에 다니는 킬러 아오마메


상처 입어 큰 덩어리처럼 보이는 거구의 상처 여기저기 손을 얹어본 아가씨는 말한다

<K빌라 A동 105호, 화장대 세 번째 서랍 바닥을 들어내면 돼, 일부는 소분해서 대여 사무실의 화장실 거울장에 쌓인 휴지심 속에 끼워두었고, 합해서 몇 개나 되는지는 모르겠어>


초능력을 한 가지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싶은가

상상해서 답하는 질문에도 우왕좌왕하며 진지해지고 이것저것 바꾸었다 다시 뒤집고 욕심을 부린 적이 있다

그러나 갖고 싶지 않은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남의 마음속 읽기였다

상대방의 머릿속과 마음을 읽는다면 읽는 나 자신이 얼마나 많은 충격을 받을까 하는 생각에서 두려웠다

-아가씨-는 상처에 손을 대고 피를 감각하며 머릿속 비밀을 읽어준다




보스는 자신의 몸에 스스로 상처를 내면서 아가씨에게 자신을 읽어달라고 호소한다

아가씨는 너만은 읽어주지 않겠다고 반항한다

아가씨의 능력을 이용하는 대신 보스는 거처를 제공한다

그러나 아가씨는 갇힌 새의 신세로 살아가며 남의 상처를 헤집어야 하는 고통에 대한 비명을 지른다

그 고독에 대한 반항으로 보스의 상처를 통해 보스의 마음을 읽는 일만은 거부하는 것이다

보스는 교통사고로 피 흘리며 죽어간다

자신을 희생하고 조수석에 앉은 아가씨를 보호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가씨는 눈을 감은 채 피 흘리는 보스의 머리를 거쳐 뺨을 쓸며 목으로 손을 옮겨간다

그들은 생의 막다른 길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이 아닐까?

사랑의 시작과 끝이 한 점으로만 존재하는 관계이다

아가씨가 보스의 상처를 감각하며 그의 어떤 마음을 읽었는지 말하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입주하여 이들을 관찰하는 -나-는 남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위장하여 보스에게 접근한 인물이다

-나- 또한 평범하지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독서 교사이며 유도로 남자를 메다꽂을 수 있는 인물이다

등장인물 특징을 열거하다 보니 무협지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그렇다 하기엔 심리묘사가 세밀하고 모티프를 이어가는 필력이 매우 탁월하며 복선이 될 만한 사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에서 첫 페이지로 다시 돌아가 읽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인물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어떤 특별한 능력은 소유한 자신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상처가 아니라 눈을 보고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해도 상처받기는 마찬가지이나 전자는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하다

그런 능력은 원하지 않는다

로맨틱하지 않은 나는 보스와 아가씨의 로맨스보다 초능력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별한 능력 한 가지를 준다면 무엇을 원할게 될까

큰 거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다

유도 실력으로 나보다 큰 사람을 메다꽂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빠르고 힘이 세고 민첩해지고 싶다

숲길을 걷다가 멧돼지를 만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정도의 건강함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낮은 담장은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의 건강을 가지고 싶다-

글로 쓰다 보니 훈련을 통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현실 인식일까 착각일까


<네이버 어학사전>

절창 切創

명사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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