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햇볕에 말리세요
제목.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기
저자. 안소현
출판. anon
분량. 257쪽
표지 사진. 책 표지
안소현 화가의 그림에세이다
작가의 글을 읽고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꽤 많은 그림에서 의자를 발견할 수 있다
의자가 주인공인 그림도 있고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을 만큼 작은 의자가 한쪽 구석에 있기도 하다
어떤 편으로든 의자를 보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연상하게 된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휴식한다
누군가가 무엇엔가 몰입하고 거기에서 안락함과 따뜻함의 감성을 기록한 글을 좋아한다
한 분야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 중에 자신의 일에 혐오를 느끼는 사람보다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혐오를 느끼면서 유명해질 때까지 열심히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고 거기에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우물을 발견했다는 것이 이미 축복이 아닐까
열정이 있다면 어떤 장애가 가로막더라도 모형 바위를 가뿐히 치워버리듯 장애를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테니스가 좋아서 눈이 쌓인 코트에 눈을 모두 쓸어내고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
물론 혼자 한 것은 아니고 회원 모두 열심히 치웠다
그러고도 전혀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집에서는 손수건 한장 손빨래도 귀찮아 하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으는지 모르겠다
열정이란 이렇게도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작가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그 만족감과 열정이 독자인 나에게까지 전이가 되어 책을 읽는 내내 안온하고 행복했다
-- 걷는 것이 힘에 부치는 지팡이 신세 할머니가 된다면 그때쯤엔 영혼의 세상을 그려보려 한다. 그때의 나의 그림이 궁금해 오래오래 살고 싶다
--마음은 집채만 한 대형 캔버스에 그리고 싶은데
팔도 아프고 작업실도 작아서 그냥 내가 작아지기로 했다
개미처럼 작아진 내가 그리는 가장 큰 그림
--그리고 싶은 게 아주 많은데 팔을 도무지 쓸 수가 없어 엉엉 울었다
-- 사는 동안 다 그릴 수 있을까?
글쎄, 생각할 시간에 그림을 그리자
--그러니까 뭐 대단한 꿈을 이루려는 것도 아니면서, 죽기 살기로 마지막인 것처럼 매일매일, 평생을 그리고 싶다
--작은 풀 한 포기처럼 무언가에 밟히고 뜯겨 먹힐지라도 태풍에는 뽑히지 않는 잡초처럼 꿋꿋이. 그런데 그게 좀 청승맞기도 해서 하루하루 재밌게 살아보려고 그림을 그린다
내용 전체에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슬플 때, 즐거울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흐릴 때, 맑을 때.
어떤 순간이든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극복하고 배가시키고 망각하고 전환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청소년 상담을 할 때 아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꿈이 없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고민을 말하는 아이들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자유와 여백을 제공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하는 부모들을 많이 본다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을 고양할 수 있다면 그 열정이 어떤 분야로 향하든 괜찮은 것 아닐까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정지된 듯한 풍경, 그 속에 내리쬐는 햇볕과 바람
공기가 햇볕에 따뜻하게 데워져 내게로 배달된다
데워진 공기의 달콤한 향까지 함께 느껴진다
어떤 풍경이든 현실에서의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 놓여 있다
햇빛의 방향이 바뀌고 그에 따라 온도가 달라지고 그림자도 움직이고 소음과 바람도 분주히 움직인다
그러나 그림 속에 담긴 풍경은 그 변화 속 한순간의 풍경으로 박재되어 있는 듯한 정밀한 느낌을 준다
분주히 움직이는 시간 속, 정지된 한 순간을 오려내어 그 정적인 느낌을 확장한 듯하다
움직임 속 정지된 순간의 무한한 평온
그 평온함이 작품 속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어릴 때 할머니 집 쪽마루에 누워 있으면 큰 추가 달린 벽시계의 규칙적인 움직임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마음을 얹어놓고 있다 보면 대낮, 쪽마루에서 스르르 잠들고는 했다
그림 속의 정지된 느낌은 졸음이 쏟아지던 순간들로 나를 순간 이동시켜 주었다
바쁘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하루하루에 표류하고 있다면 안소현 작가의 <여기에서 잠시 쉬어가기>를 읽고 정지된 풍경 속에 잠시 졸아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