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시대-를 읽고
제목. 부끄러움의 시대
저자. 장은진
출판. 자음과 모음
분량. 222쪽
표지 사진. 픽사베이https://pixabay.com/ko/photos/%EC%9A%B0%EC%82%B0%EB%93%A4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습기도 싫지만 추위도 싫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기온이 내려간다
무엇이 싫다는 것은 바람직한 감정은 아니다
삶의 폭을 좁히고 움츠러들게 하기 때문이다
싫은 것이 적을수록 삶이 자유롭고 즐거울 것이다
겨울도 싫었다
춥기 때문이다
역시 일년의 네 달 이상은 삶이 위축되고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겨울을 좋아하게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스키였다
스키는 겨울에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고 그러면 겨울을 기대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스키를 배우고 그 스포츠를 즐긴 이후로 겨울에 대한 공포가 많이 줄어들었다
눈이 내린 설산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스키 플레이트 아래의 뽀드득하는 눈의 폭신한 감촉이 뇌로 전달되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다
스키를 타다가 먹는 컵라면의 맛, 뜨거운 커피의 맛, 온천수에 몸을 데우는 느낌은 중력을 줄여 내 몸이 깃털처럼 공중부양이라도 하는 듯한 즐거움을 주었다
부끄러움의 시대
이 책은 비를 싫어하는 나의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싫은 것이 하나 더 사라짐으로써 자유의 영토가 평수를 넓혔다
어묵탕이 싫은 것보다 비 내리는 날이나 겨울이 싫다는 것은 삶의 많은 시간을 지배하는 영역이어서 극복해야만 하는 화두인지도 모른다
어묵탕 정도야 내 의지로 피할 수 있고 남들 모르게 먹는 척 연기를 할 수도 있다
날씨나 기후, 계절은 피할 수 없고 상대적으로 많은 넓이로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를 해방시켜 준 책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스승으로부터 수제 우산 장인으로 교육을 받는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날에 비가 왔다
장지에 조문객들이 펼쳐든 우산이 꽃처럼 피어났다
주인공 -강한해-는 스승의 장례를 치른 것이 봄이라고 착각한다
손님들에게 우산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로 꽃이 핀다
스승님은 말했다
- 가을 빗방울에는 사람의 심장에 구멍을 내고 도망가는 습성이 있으니 함부로 맞지 말라-고
- 우산이 가장 필요한 비가 가을비니 잘 맞이할 수 있도록 특별히 우산을 잘 준비해 두라-고도 했다
이 문장을 읽고 언젠가 비를 맞고 심장에 구멍이 난 적이 있었던 듯하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봄 빗방울을 조심하여 항상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도 챙긴다
황사나 초미세 먼지가 빗물에 섞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름이나 가을비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잘 맞고 다니는 편이다
장인이 만든 명품 수제 우산이 아니더라도 우산을 잘 준비해야겠다
부끄러움이 많아 유령처럼 살았던 한해의 아버지,
가을비를 조심하라던 스승님,
우산을 매개로 연인이 된 강한해와 이봐요씨를 생각하며 빗속을 걷는다면 그리 춥지도 불편하지도 않을 것만 같다
제목 ㅡ부끄러움의 시대ㅡ는 부끄러움 많은 한해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아버지의 부끄러움은 수줍음이다
무엇을 잘못해서 느끼는 수치심이 아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부끄러움은 수치심과 수줍음이라는 설명이 있다
둘은 다른 의미인데 부끄러움이라는 고유어 한 단어로 쓰이고 있다
다시 영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수치심은 shame - guilt
수줍음은 shyness - nervous
라는 설명이다
신학기 급우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의 어색함이 수줍음이라면 숙제를 해오지 않아 교실 뒤에 서 있는 벌을 받을 때의 느낌이 수치심의 예가 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든 부끄러움의 감정이 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주인공 한해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로부터 아버지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호텔-이라고 말한 순간 아이들은 호텔리어구나라고 외치며 멋지다고 아우성이다
이때 한해는 아니 호텔 청소부라고 말하려 했으나 한해가 혼자 좋아하던 여학생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문다
이때 한해의 기분은 부끄러움일 수 있겠으나 그것은 정확히 수치심도 아니고 수줍음도 아니다
수줍음과 수치심이 섞인 감정에 뭔가 다른 감정들이 섞여 있다
마치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닌 상황처럼
스스로에 대한 자책, 여러 사람 앞에서의 당혹감,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상처 입고 아파한다
상처를 주는 것은 자신일 수도 타인일 수도 의도된 것일 수도 우연일 수도 있다
한해는 아버지의 직업을 부끄러워했던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하여 아버지를 더욱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존경한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견디며 버티며 그 일에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청소이든 우산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
우산 만드는 일에 최고가 되고 싶은 한해의 설명이다
----- 쓰고 나서 보통은 손잡이가 위로 가게 세워두는데 꼭지가 위로 가게 해야 돼요
그래야 꼭지에 물이 고이지 않아서 우산대가 녹슬지 않아요
사용 후에는 수돗물로 한 번 헹궈주는 것도 좋아요
꼭 완전히 펴서 말리시고요
얼룩이 묻었을 때는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 문지르면 깨끗해져요
방수 기능이 떨어졌다 싶으면 백반 가루를 갠 따뜻한 물을 겉면에 발라주세요
코팅 효과가 생겨서 빗물이 새는 걸 막을 수 있어요-------
비 오는 날 내 우산 속에는 습기와 한기로 구겨진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해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와 스승과 봐요 씨가 다 같이 있다
아름다운 우산을 쓰고 나와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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