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스티커 여러 장을 펼쳐놓고 말한다
"잠꾸러기" 찾아보세요~
네 살 된 아들과 한글 공부 중이다.
스티커 종이에는 곰, 잠꾸러기, 원숭이, 장난꾸러기, 네 가지 단어 스티커가 구름 모양 종이에 쓰여 있었다.
아이는 "잠꾸러기" 대신 곰을 집었다.
손등이 통통하게 구름빵처럼 부풀어 있어 자꾸만 쓰다듬고 싶었다.
짧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오므려 가며 힘을 들여
자꾸만 곰 스티커를 떼어내어 내 손에 주었다.
속이 상했다.
곰은 한 글자고 잠꾸러기는 네 글자인데 그것을 못 찾다니 이 일을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샐쭉 토라져서 오늘 공부 그만하자 하고 책을 덮었다.
아이는 이유 없이 주눅이 들었다.
부엌에서 차를 끓이며 생각했다.
왜 글자를 못 찾을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는 글자 맞추기가 아니라 ㅡ곰은 잠꾸러기라고ㅡ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은 수요일이다.'라고 했을 때 오늘 찾으세요 하면 수요일을 가리키는 식이다.
아이는 글자 맞추기가 아니라 개념 말하기를 하고 있었다.
가르친다는 것은 어렵다.
가르친다는 사람 자신이 자기 틀에 갇혀서 모호한 질문을 하면 배우는 아이는 혼돈 속에 놓이게 된다.
내 잘못은 생각지 않고 섣부른 판단으로 실망하고 은근히 날을 세워 아이의 사기만 떨어뜨려 놓았다.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었다.
항상 다정하고 살가운 아들이다.
미숙하고 준비 없는 부모였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준 상처들을 어루만져 보상해주고 싶지만 인생에 복습이 없듯이
육아에도 복습은 없는 듯하다.
남은 시간이라도 더 잘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