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녹색 마드리드
일주일간 마드리드에서 두 번이나 눈물을 훔쳤지만, 울던 때의 막막함과 현실을 몰라보고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무색하게 나는 빠르게 마드리드에 적응해 갔다.
수업은 거듭되면 될수록 재밌고
(특히 데이비드 쌤이 짱이었다. 선생님 사랑해요.) 혼 외식은 하면 할수록 자연스러워져서 이제 혼자 못 먹을 게 없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아직까지도 그 자신감이 사라지질 않아서
조만간 뷔페에 가보려고 한다.
처음 유럽 양식의 늘어진 건물들을 보고 느꼈던 감동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포만감은 쭉쭉 늘었다.
평일엔 학원 일정 때문에 먼 곳까지 갈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여러 구를 맛보려고 노력했다.
마드리드에서 2주간 머무르며 내가 가본 동네는 이 정도다.
차마르틴, 참베리, 살라망카, 라바피에스,
레티로, 센트로, 그란 비아(거리), 오페라......
동네에서 어학원까지 40분 내로 갈 수 있는 곳 위주로 돌아다녔고 가까운 거리라면 걸어서 학원으로 갔다.
수업이 끝나면 4시간 동안 떨어진 당을 채우기 위해 황급히 마트로 가서 당일 먹을 간식을 샀다.
기대하며 집은 갈색 오레오가(쿠키맛인 줄 알았지.) 알고 보니 '생강빵' 맛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강맛 오레오가 말이야 방구야...
그 마트 스낵 코너에서 이미 인사하고 헤어진 반 친구들을 자주 마주쳤다.
지하철을 타고 과달라하라에 있는 집까지는 약 40분 정도...
집에 가면 보통 나이아라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고, 우린 조금 어색하게 (나만 좀 뻘쭘했는지도) 올라, 올라를 주고받고 나는 방으로 들어간다.
태블릿을 보거나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고 있으면 8시쯤, 집주인인 마르가 귀가한다.
원래 아침만 제공한다고 쓰여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녁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원체 밥 먹는 속도가 느린데 맛이 없어
깨작거린다고 오해할까 봐 항상 조금 불안한 상태로 밥을 먹었다. 집주인인 마르는 활기찬 성격이다. 회사 일이 끝나고 그녀가 돌아오면 나도 바로 방에서 나와 인사를 나눴는데
항상 힘찬 ‘올라’와 ‘깨 딸?’을 보여주어 나도 평소보다 좀 더 밝게 인사했다.
@여기서 깨알 스페인어
‘깨 딸? (Qué tal?)’은 어때?라는 뜻이다.
<How are you? 와 같은 뜻이라 만나서 가볍게 쓰면 된다.>
좋으면 ‘무이비엔 (Muy bien)’
혹은 ‘비엔 (Bien)’.
그냥저냥이면
‘마쏘 메노스 (Mas O Menos)’라고
대답하면 된다.
벌써 5화니까 슬슬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에 관해서도 풀어보겠다.
처음 일주일은 나와 선생님 포함 9명이 같은 반이었다. 우리 반 등급은 A1. 제일 낮은 단계다. 그래서 초반엔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지문 하나 읽는 것도 참 버거웠는데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산체스가(산체스는 중국인이고 40대 초중반이었다. 회사 지원 프로그램으로 이곳에 온 듯했다.) 대포 같은 한숨을 푸욱 쉬었다.
쌤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 정도로 큰 한숨을 쉬어 내는 게 신기하고 웃겨서 계속 웃음이 픽픽 새어 나왔다.
산체스의 한숨은 신기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보통 누가 한숨을 쉬면 다 같이 힘 빠지는 게 일반적인데, 기묘하게도 우리 반은 산체스가 한숨을 쉴 때마다 활력을 띄었다. 다 같이 폭소하고 나서 주윌 둘러보면 다들 묘하게 신난 표정이었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한숨 쉬는 순간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기묘한 게 또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책상이다. 교실처럼 책상이 앞뒤로 줄지어 놓여 있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벽의 삼 면에 ‘ㄷ’ 자로 퍼져 있었다. 그러려면 책상 옆의 공간으로 들어가 몸을 의자에 얹을 만큼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
책상은 여덟 개가 공간 없이 따닥따닥 붙어있어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가 없는데 이를 어쩌나?
책상 뚜껑을 열면 되지.
어학원 책상은 그냥 책상이 아니라 다리(지지대)가 왼쪽에만 있고, 그렇기에 오른쪽으로 스무스하게 책상 뚜껑을 열 수 있는 스페셜 책상이었다.
스페셜 책상은 맘에 들었지만 작은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책상에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상태에선
손쉽게 뚜껑을 열 수 있지만,
보통은 모두가 수업을 위해 책상 위에 필통, 교과서, 휴대폰, 텀블러, 필기 노트 등 등을 즐비하게 올려놓은 채였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들어 의자에 옮기고 힘겹게 나오거나
물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뚜껑을 아주아주 조금만 열어서 좁은 틈새로 몸을 집어넣어야만 했다.
수업이 평화롭게 진행되다가도 갑자기 물건 떨어지는 소리가 퍽퍽 나기 일쑤였고 그런 일들은 산체스의 한숨 소리와 같은 맥락으로 모두를 즐겁게 만들었다...
<마지막 주 했던 활동>
작가의 말: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한 편씩 연재됩니다. '5화. 마드리드, 라이프!'편은 예정대로 12일 오후 7시에 업로드되었으나 제가...
에스파냐와 자퇴생이 아닌 기본 게시물로 올린 탓에 수정하여 제대로 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