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금 멋진 일을 해낸 건가 봐(1)

1. 녹색 마드리드

by 노아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첫 노동은

스타필드 행사 단기 아르바이트였다.



백화점에 수많은 가게들이 정갈하게 줄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한편,

백화점 복도 가운데에서 매주 브랜드 별로

번갈아가며

매대 여러 개와 며칠 동안만 특별 세일 하겠다는

홍보 문구를 올려놓고 장사하는 공간이 있지 않은가.

그곳에서 나의 알바도 시작되었다.

딱 7일짜리 알바였고, 휴식시간 포함

10시부터 6시까지의 일급이 팔만 오천 원이라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무한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미 이력서 불합격을 많이 많이

맞본 상태였기 때문에,

"에이 설마 되겠어~? 나라도 날 안 뽑겠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 척을 하며 유럽 축구팀에

관한 정보를 달달 외워 면접을 갔다.

(알바몬 우대 조건에 '유럽 축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 적혀 있었기 때문에...)


면접 시간 30분 전, 스타필드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다짐한 건 딱 하나였다.

있는 대로 똘똘한 척을 하자.

양이 얼마 안 되는 똘망 똘망 함을 모조리 꺼내 보자!


며칠이 흐르고 점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며칠간 간절히 기다렸던 연락이었지만

자신이 알바 경험 없는 미성년자임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분명 실망하게 될 것이란 각오 후에 휴대폰을 들어 귀에 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중에 아르바이트하는 오빠한테 들어보니, 점장님의 채용 우수 조건이 "열심히 할 것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역시... 첫인상은 똘똘해 보이게.)


아르바이트 시작하기 전

용돈으로 모아놓은 돈이 약 120만 원가량이었고,

옷가게 행사 단기 알바로 575,000원 벌었으니,


6월 10일 어학연수 비용: 약 177만 원.





첫 주차에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나까지 8명.

내가 우리 반에선 유일한 미성년자이며 가장 어렸다.


그다음으로 어린 자들은 20대 초반의 러시아에서 온 율리아나, 스위스에서 온 네오였는데

율리아나는 첫 수업에서 첨 본 순간부터 내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수업 중에도 계속 눈이 갔다.

패셔너블한 옷차림과 장난스런 말투가 자유로운 유럽인 그 자체처럼 보여서다.

실은 내가 스페인에서 입고 싶었던 옷을 율리아나가 거의 그대로 입고 있어서이기도 했던 것 같다.



네오 역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내 옆 자리였어서 비교적 더 기억에 남기도 하지만 그보 그가 민머리인 게 더 크게 작용했다.

첫날엔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와서 영화 캐릭터처럼 보였다.

네오의 나이를 듣고서 좀 놀랐다.

네오가 나이 들어 보여 서라기보다...

네오가 나랑 몇 살 차이 안 난다기엔

그가 너무너무 이십 대 같아서였다. 이십 대가 이십 대처럼 보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율리아나와 네오는 너무나도 이십 대 답게 생겼고,

너무너무 미성년자 같이 생겼다.

십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 그 사이엔 청계천 만큼의 거리감이 있는 것인가??



필리핀에서 온 미아의 첫인상은 살짝 시큰둥해 보이는 표정이었는데

알고 보니 미아만큼 밝고 귀여운 사람이 없었다.



모든 게 기억나는데 어느 곳에서 왔는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 마리드는

뿌리 쪽은 검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밝은 금발이었다.

선생님이 무언가 설명하고 있을 때나 누군가 발표를 할 때 씩 웃어주는 모습이 너무 스윗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독일에서 온 언니의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게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

이름만 빼고 그 외의 것들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금발의 긴 머리에 평소 회색 후드티와 나시를 자주 입고 나타났던 언니는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살아보았다고 했는데,

어림잡아 들은 국가만 다섯 곳은 되었던 것 같다.

팔에 검은색 타투가 있고 조용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쿨한 느낌이 들었다.



그다음으로 저번 화에서 미리 언급했던 산체스.

중국에서 온 산체스는 보통 캐주얼 정장을 입고 어학원에 왔다.

산체스의 장점은 지루하고 피곤한 심정을 굳이 숨기진 않는다는 것이다. (산체스 최고)

그는 수업에서의 미니 게임을 정말 즐겼다.

산체스 덕분에 난 40대와 친구가 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산체스를 포함해 스페인에서 우연히 만난 몇 명의 40,50대들 덕분에(!)

난 앞으로도 그들과 친구 먹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미국인인 구엔을 소개하겠다.

구엔은 풍성한 단발머리를 쿨하게 넘기고 다녔는데,

특유의 인자한 분위기 때문에 첫인상이 정말 좋았다.


내가 몇 살인지를 스페인어로 말했을 때 “어쩐지~~ 어려 보였어~~”

“십 대라고??” 하는 반응들이 웃기고

부끄러우면서도 좀 우쭐해져서… 자기소개하는 순간을 즐겼다. 지금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반응들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처음으로 간 유럽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깊게 남는다.

그들에 대해 잘 몰라서

이주 동안 머릿속에 수집해 놓은 지극히 표면적인 특징들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아직까진 기억에 있는 특징들까지

나중에는 모조리 까먹어버릴 것만 같은데,

정말 그렇게 되면 조금 슬퍼질 것 같아서

막손으로 그린 그림과 함께 게시한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실물과 그다지 비슷하지 않은 초상화들은

앞으로도 계속해 그려나갈 예정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