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조금 멋진 일을 해낸 건가 봐(2)

1. 녹색 마드리드

by 해고

(어쩌면 조금 멋진 일을 해낸 건가 봐)

세비야로 가는 고달픈 기차 여행 전 날,

반 친구들과 함께 라바피에스(Lavapiés)에 있는 타파스 바로 갔다.

배고픈 상태라 음식점이 아닌 게 아쉬웠지만 아이패드에 적어 놓은 버킷리스트 목록 중

“스페인 바 가기”가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술을 못 먹는 나와 마시지 않는 이네스는 각자 콜라를 시켰고,

미아 주도로 안주도 여러 개 시켰다.

완전 로컬 바(굳이 비유하면 스페인의 '할맥', 힙한 '할맥'같은 느낌이고 라바피에스는 홍대, 이태원 같은 느낌이려나)였는데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위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바 안을 매웠다.


타파스와 맥주,

콜라, 알콜이 들어간 에이드 등을 앞에 두고서 자신에 대한 꽤 많은 이야길 공유했다.

어쩌다 스페인에 오게 되었는지,

오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그 중 나만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서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더듬 더듬 늬앙스를 찾으며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이네스는 선생님이 꿈이어서 스페인어를 배우러 스페인에 왔고, 네오는 자유로운 연애 지향자(?)인 것 같았다. 미아는 스페인에 남자친구와 함께 왔지만 지금은 헤어진 상태였다.

내가 성인이 되면 클럽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니 미아는 "그렇잖아도 곧 가게 될 거야~(곧 성인이니까) 인생을 즐겨~" 하고 화답해줬다.




8시가 넘자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며 인사를 하고 급히 인스타 아이디를

메모장에 받아서 지하철에 탔다.

마지막 날을 거의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

몸인지 맘인지 어딘가 한 구석이 따스하게 헛헛해졌다.


겨우 2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너무 많은 이야길 듣고 느낀 탓에 피로하면서도 오히려 살짝 각성이 된 상태로 지하철에 서서 멍을 때렸다.

(저녁이라 사람이 발 딛을 틈 없이 꽉 차 있었다.)


그날 내가 그들에게 말하고 들은 건

각자 인생에서 아주 적은 양을 차지할 뿐인

에피소드들일 테지만 그래도.

그래도 여기에 오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감정이라는 것이 확실했다.

오길 정말 정말 잘했다고 잘 쓴 일기장에 도장 찍듯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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