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트)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써 무사히 세비야로 이동한 나는 짐을 풀 힘도 없어 캐리어를 대충 눕히고 침대에 퍼질러 누웠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이런 욕구가 강렬하게 들었다.
오늘 저녁, 무조건 양념 치킨 먹는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 물으면 고민 없이 치킨이라고 답할 거다.
2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꼭 4번씩은 치킨을 먹었다. 후라이드보다는 달짝지근한 양념 파다.
근처에 양념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8시에 다시 연다는 걸 확인하고, 그 시간까지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나만의 양념치킨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후 4시 반이 지나며
날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비가 미친 듯이 오는 게 아니겠는가?
불안한 맘으로 날씨 앱에 들어가니
내일까지는 계속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치킨에 대한 애정이 무색하게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치킨을 포기할지(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 끝까지 밀고 나갈지.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과 방법들이 스쳐 지나갔다.
“피곤해... 자고 싶어... 배고파... 길 찾기 힘들어... 배고파... 힘들어...”
과정이 중요한가, 결과가 중요하지.
결과적으로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자리 잡은 생각은 “나 오늘 무조건 치킨 먹을 거야.” 였다.
8시에 가까워질 때 즈음 우산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 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비장한 맘으로 다가선 현관문 앞에서 고전하니 참으로 모냥이 빠졌다.
밖으로 나와 보니, 낮에 잠깐 본 맑고 푸른 하늘은 온대간대 없고 이곳이 세비야인지, 라스베가스 인지도 못 알아볼 만큼 비가 폭주했다.
지은탁이 된 맘으로 그저
도깨비가 우나보다 생각하며 퍼오는 빗 속에서 줏대 있게 길을 걸었다. 다른 분야에선 몰라도 먹을 때만큼은 줏대 있어야 하잖아.
길 잃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 3초마다 지도를 확인하며
한 발 한 발을 심도 있게 내딛었다.
이 여정이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게 되면 어쩐지 한 층 성장해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기분까지 들 정도로 비장했었다고 봐주셔.)
그렇게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가려던 한식집에 도달했다(!)
내 야상 점퍼는 빨래한 것 마냥 젖어있고 양말이 축축했지만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음식점 안에서 안내받아 들어가니,
한국인 몇 팀이 이미 자리 잡아 있었다.
스페인에 온 후 잘 보지 못한 한국 사람들이라
마음 한 구석이 안심되고 긴장이 싹 풀렸다.
나는 3종 치킨을 시켰다.
양념/후라이드/간장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메뉴고 콜라까지 31.5유로가 나왔다.
한국이었다면 시부럴
오만 오천원 주고 치킨 한 마리를 사 먹지는 않았겠지만 그 곳은 유럽이었기에 돈 아까운 맘보단 설레는 맘이 더 컸다.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꼭 가방 들고) 기다리다 보니 드디어 나의 님이 등장하셨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세 가지 맛의 닭이 원형 안에 정리되어 있고 가운데엔 감튀, 후라이드를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소금, 감자튀김 찍어 먹으라고 케찹이 함께 왔다.(센스 굿)
얼음컵에 콜라 좔좔 따르고 먼저 한 입 했다.
입 안에서 싸악 퍼져서 삼킬 때 위까지 기포가 번지는 느낌, “수고했어, 마드리드에서 세비야까지 혼자 오느라 고생 많았지? 이제 즐기렴.”이라고 말을 걸어오며 위로와 함께 맘의 짐까지 덜어주는 느낌이었다.
후라이드에 소금 살짝 찍어 한 입, 감자튀김 한 입, 고대하던 양념 크게 한 입, 간장 한 입.
그제야 세비야를 제대로 즐길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세비야 첫 날부터 내 맘 모르고 콸콸 쏟아지는 빗줄기도 그저,
치킨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나의 장치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좀 고기질은 좀 뻑뻑했는데 별 문제 없었다.
배부른 데도 계속 들어가서 양껏 먹고
남은 치킨은 소중히 포장해서 숙소로 가져갔다.
*다이어트 중 흥분된 상태로 치킨 관련 글을
작성하다보니, 글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조금 경박합니다.
완성도보다 당시 현장감과
치킨을 향한 생생한 떨림에 집중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저녁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