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을 떼다
처음엔 집 뒤의 도봉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동네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산행할 때도 가끔씩 올랐고, 산에 가고 싶을 때는 언제든 편하게 가던 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걸어야 했다.
첫 날은 무리하지 않게 체력 테스트 정도로 걸었고, 다음부터는 조금씩 산행거리를 늘려갔다.
처음엔 걸으면서 숨도 차고 쉬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가는 횟수가 늘수록 복식호흡도 하게 되고 쉬어가는 횟수도 줄면서 더 길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어느정도 산에서 걷는 것이 적응되자 산악회에 가입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았다.
먼저 북한산 종주 17km 걷기에 신청했다. 집에서 가까운 산이고, 장거리 산행이라 가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젤 앞쪽에서 빨리 걷는 선두, 그 뒤로 선두와 간격을 두고 걷는 중미, 그리고 느긋하게 뒤쪽에서 걷는 후미. 이렇게 나누어진다.
나는 중간에 서기로 했다.
중간에서 사람들을 따라가며 뒤처지지만 않는다면 민폐는 되지 않겠다고 생각해서였다.
북한산 종주는 처음 오를때와 중간에 경사가 심한곳도 있지만 산에 어느정도 오른 후에는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걷는 길도 있어서 좋았다.
때로는 빠르게, 오르막에서는 천천히 경치를 감상하며 걸었다. 긴 시간 산행이 처음이라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도봉산을 꾸준히 오른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크게 힘든점은 없었다.
어느정도 걸었다 싶을때쯤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 할 자리를 잡는다.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치며 도시락 메뉴에 대해, 산행코스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산에서 함께 먹는 식사는 맛이 있었다. 함께 밥을 먹고 걸으며 조금씩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중간자리를 유지하려고 마음을 쓰며 걸었다.
긴 산행을 무사히 마치자, 지방의 큰 산들을 가보기로 했다.
새벽에 만나 몇시간 차를 타고 내려간 후 산행을 해야 하는 코스라 서울 근교 산행과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백두대간을 하려면 차를 타고 가는것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몇 번은 꼭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로 가야산을 선택했다.
출발 장소에 가려면 새벽 전철을 타야한다. 거기서 또 몇시간 버스를 타고 경남 합천으로 이동했다. 모자란 잠은 차에서 보충한다.
산에 오르면 산이 주는 에너지에 몇시간 차에 흔들린 몸이 살아나는 걸 느낀다.
걸으면서 맡게되는 풀냄새와 흙냄새가 편안함을 준다.
초록의 색을 보며 걸으니 눈도 시원하다.
소박한 점심과 맛있는 이야기로 함께 걷다보면 어느새 종종 웃음 짓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가슴엔 큰 돌덩이를 안고서.
몇 번의 지방산행을 무사히 마친 후 백두대간을 하는 까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6월부터 시작하는 까페가 있어서 가입하고 산행신청을 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총 1,600km이고, 남쪽구간(진부령-지리산)만 총 730km 정도 된다.
모두 35구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2주에 한번씩 토요일 밤 11시에 사당역에서 출발한다.
지리산에서부터 1구간으로 정해져 있기에 내려가는 동안 차에서 잠을 잔다.
일요일 새벽에 출발지점에 도착하면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아침과 점심 두끼를 산에서 먹고 오후에 내려와 버스를 타고 서울로 다시 돌아온다.
한 달에 2번씩 산행을 하면 총 1년 6개월 뒤에 마칠 수 있다.
당일코스로 지방의 산을 다녀오는 것과는 또 다른 도전이다.
도시락도 2개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가방도 무거워진다.
잘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시간들을 상상하며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가슴엔 아직도 큰 덩어리가 있다.
조금씩 웃음을 짓기도 하지만 온 몸은 여전히 큰 슬픔에 젖어 있다.
또다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새벽부터 걷는 산행이 주는 두려움을 안은채 버스가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