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ent designer Jun 18. 2021

우리 집엔 블랙홀이 있어요

미니멀리스트 선언문


"여보, 검은색 비니 모자 못 봤어?"

"엄마, 라푼젤 인형 구두 찾아줘"

"아.. 분유 제조기 사용 설명서 어디다 뒀지.."


꼭, 찾으려고 하는 물건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집안 구석구석 모두 뒤져도 나오지 않을 땐, 고구마 백개 정도 먹은듯한 답답함과 함께 '물건에 발이 달린것도 아닌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집안 풍경을 둘러보니 물건이 가득하다. 오색찬란한 아기용품과 장난감들이 거실을 점령하고 있었고, 옷방은 물려받은 옷 꾸러미들이 한가득이다. 책상에는 책이 마구잡이로 쌓여있고, 주방 싱크대 위 트레이에는 잡다한 작은 물건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숨이 막혔다. 이 집에 물건이 사는 건지, 사람이 사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저 물건들은 언제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집으로 들어와 이렇게 영역 확장을 해버린 걸까.



남편과 나는 매일매일의 집안일을 성실히 하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대청소를 한다. 물론, 돌아서면 또 어지러 버리는 아이들 때문에  어느 정도 포기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집을 깨끗이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리 청소를 해도 마음이 개운해지지 않는 찜찜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 생각하다 찜찜함의 이유를 발견했다. 

우리는 그동안 '청소'만 하고 '정리'를 하지 않았던 거였다.


청소는,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함.

정리는,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종합함.

-문제가 되거나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거나 없애서 말끔하게 바로 잡음.


뜻을 찾아보니 더 명확해진다. 우리가 해야 할 건 청소가 아니라 정리였다. '청소'와 '정리'는 분명히 다르다. 정리정돈이 안된 상태에서 백날 청소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 당연한 진리를 이제야 눈치채다니... 어쩌면,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물건을 비워낼 마음의 준비가 안됐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뒤로하고 당장 눈앞의 '더러움'만 처리하며 몇 년이 흘렀다. 그 '모른 척'이 쌓이고 쌓여 물건들로 드러났다. 


무언가에 짓눌리는 기분이 든 건, 물건 때문만은 아닐 거다. 알면서도 모른 척 뒤로 밀어놓았던 중요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급한 일로 덮어 두었던 중요한 가치들을 꺼내 볼 때가 왔다는 걸 '물건'들이 알려준 샘이다.


청소 말고 정리를 해야겠다. 쓸데없는 '물건'들과 쓸데없는 '생각'들을 깨끗이 비워내고 간결하게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불현듯 나에게 찾아왔다.


내게 중요한 가치를 우선순위로 두고 불필요한 것들은 과감하게 포기하는 삶의 방식. 
미니멀리즘이란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을 살겠다는 선택이다.  

-에리카 라인-








내일, 곰돌이 빵 작가님은 '테스크톱'과 '랩톱'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태양은 하루에 두 번 시간을 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