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계숙! 선생님한테 와봐~”
갑작스러운 선생님 호출에 놀라 선생님 책상 앞으로 나간다.
“너, 내일 어머니 좀 학교에 오시라고 전해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대답하고 집으로 와서 엄마한테 선생님의 말씀을 전한다. 엄마가 이유를 물었지만 모른다고만 답하곤 엄마의 호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지만, 알 수 없다.
다음 날 저녁, 퇴근하고 오신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신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나에게 아버지가 물으신다.
“그렇게 피아노가 배우고 싶니? 그러면 내일부터 피아노 배우거라.”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네가 피아노 배우려면 가출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일기장에 썼다며? 엄마한테 들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하게 된 5학년 짜리 여자아이는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크게 인사하며 마당으로 나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5학년 봄 어느 날에 내게 일어났던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같은 반 친구 정자가 피아노 배우는 모습을 본 이후로 ‘나도 정자처럼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우리 집에서 피아노를 배운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그래, 내가 직접 돈을 벌자. 내가 가출해서 아르바이트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그 돈으로 피아노를 배우자.’라는 것이었다. 이런 나의 결심을 일기장에 썼는데 일기장을 검사하시던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시고 엄마를 호출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부잣집 아이들만 배울 수 있던 피아노를 배우게 되었다. 집에 피아노를 가지고 있던 정자가 한없이 부러웠지만 판잣집 한 채 값에 달하는 피아노를 갖는다는 것은 그 당시엔 불가능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피아노 수업을 허락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철이 들어버린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피아노를 열심히 배웠다. 그러나 집에서 따로 피아노 연습을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피아노 실력을 쌓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피아노에 뛰어난 소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 말이 되자 본격적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할 때가 왔다. 어떻게든 나의 진로에 관하여 결정해야 했다.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나는 네가 예고 진학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 나를 도와서 레슨을 하면 학비에 보탬이 될 거야.”라고 하시며 피아노를 계속 칠 것을 권유하셨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은 내가 피아노 전공하는 것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을. 아르바이트로 전공자의 길을 갈 수 없다는 것을….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그 길로 피아노교습소 가는 것을 접고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우리 딸이 5살이 되었을 때 우리 집 거실엔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딸아이 피아노 교육을 위해서는 피아노가 집에 있어야 한다고 우겨서 좁은 거실에 피아노가 들어앉았다. 딸을 위한 것이었을까, 나의 미련을 위한 것이었을까 사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음악에 대한 사랑은 평생 나를 사로잡았고,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각종 악기를 조금씩 배우며 나의 허기진 배움을 채워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악기 하나도 나의 악기로 남는 것 없이 수박 겉핥기식으로 시작하다 끝내기를 반복하였다. 육아 때문에, IMF 때문에, 발령 때문에, 연습실 때문에…. 이유는 다양하였지만, 미련만 있을 뿐 소질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게 다.
그런데 68살의 나이에 나의 악기가 생겼다. 퇴직 후 인터넷으로 조금씩 익혔던 오카리나를 작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여 ‘오카리나 연주 및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다. 이젠 버스킹도 하고, 무대에서 연주도 하고, 복지관을 찾아 봉사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오카리나를 불고 있는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카리나에 대한 사랑도 깊어 갔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오카리니스트로 노년을 보내는 것인데 조금씩 그 꿈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시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으로 평생을 살아온 지금, 그때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는 70세를 목전에 둔 나이에서야 가지 않은 길을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