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사무실의 전화기에서 나를 찾는 전화음이 울린다. 핸드폰으로 걸려 온 전화가 아니니 업무상 전화려니 하고 무심히 받는다.
“예, 과학교육원 교수부장 윤계숙입니다.”
“선생님, 저…. 지혁이에요. 오 지혁~”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진다.
“누구? 지혁이라고? 오 지혁이라고?”
“네, 선생님! 저 지혁이에요. 상오 초등학교 5학년 3반 학생이었던….”
“세상에! 지혁이가 어떻게?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어디에 살고 있고? 지금 뭐 하며 살고 있어?”
지혁이가 대답할 틈도 안 주고 나는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전화했니?”
“선생님 계신 곳을 알만한 친구들한테 물어서 찾았어요. 선생님, 5학년 때 제가 선생님 속을 너무나 썩여드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생각하니 너무나 어이없는 짓을 했더라고요.”
“그때 일을 기억하고 있구나. 나도 너희들 동창회 할 때마다 아이들 만나면 네 소식을 늘 물었단다.”
“예, 친구들한테 선생님께서 제 안부를 궁금해하신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지금 화성에서 작은 공장을 하나 하고 있어요.”
“어이구~ 잘했네~ 가깝게 있으니 내가 있는 사무실로 한번 오렴~ 만나서 그간의 이야기도 좀 듣자꾸나.”
지혁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쑥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사실은 선생님 발 사이즈를 알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발 사이즈? 발 사이즈는 왜? 너희들이 알다시피 내 발은 아주 작아서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을걸~ 하하하”
“그때 우리 집에 오시느라고 선생님이 오랫동안 걸으셨잖아요. 그게 너무나 죄송해서 선생님께 운동화 한 켤레 선물해 드리려고요. 좋은 운동화로 준비해서 드리고 싶어서요.”
“어머나! 감동이네~ 그래, 30년 전 제자가 주는 선물이니 받아도 되겠지? 내 발은 225야.”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운동화 사서 곧 찾아뵙겠습니다.”
1981년 5월 3일 일요일 아침 9시. 나는 우리 반 53명을 태운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3월 1일 자로 발령받은 새내기 초임 교사가 겁도 없이 반 전체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과학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다행히 친절하신 학부모의 배려로 우리 반 학생 53명만 태운 시내버스에서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종알종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무언가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하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서울과학관 견학’을 제안하였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하였고, 나는 과학관 견학을 미끼로 삼아 생활지도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서울과학관에 도착한 학생들은 각종 전시물과 체험시설에서 보고, 만지고, 직접 체험해 보며 교실에서 얻을 수 없었던 각종 과학 지식을 습득하고 신나게 견학하였다. 과학관 견학을 마치고 창경궁으로 이동하기 위해 학생들 인원을 확인하는데 한 명이 부족하였다. 맙소사! 지혁이가 없었다.
과학관으로 다시 들어가서 다 뒤져보아도 지혁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머리는 멍멍해지고 귀에서는 이명 소리가 났다.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남은 학생들은 서둘러 귀가 지도를 하였다.
난 혼자 남아서 창경궁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리겠노라고, 너희들은 먼저 집으로 가라고, 집에 갈 때 차 조심하고 절대로 다른 데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는데 미영이를 비롯한 여자아이 5명이 와서 “선생님, 저희도 선생님하고 같이 기다릴게요,” 하는 것 아닌가. 그 상황에서도 그 여자아이들이 너무나 기특하고 고마워서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주고 함께 창경궁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철커덕!”하고 창경궁의 문이 닫힐 때까지 지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해야 하나? 아니야, 그래도 지혁이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일단 지혁이 집에 먼저 가 보기로 했다.
핸드폰은커녕 집 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지혁이 집 주소만 달랑 들고 우린 다시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여자아이들은 눈물을 훔치며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우리는 모두 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곳까지만 버스가 가기 때문이었다. 같이 지혁이 집으로 가겠다는 여자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4km를 걸어 지혁이 집으로 갔다. 이미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희미한 가로등이 차도와 인도를 구분해 주고 있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아예 인도가 없는 길이 나타났다.
‘이렇게 먼 곳에서 지혁이가 학교엘 다니는구나.’
점심도 굶은 상태에서 지혁을 찾느라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몇 시간을 버텨온 터라 발걸음은 비척비척 하였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마을에 이르러서야 지혁이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침 지혁이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지혁이 담임인데요. 오늘 우리 반 학생들하고 서울과학관엘 갔었는데 지혁이가” 하는데 지혁이 어머니가 내 말을 자르며 말을 받았다. “지혁이 2시에 와서 자고 있는데요~ 그럼 그때 끝나고 온 게 아니었어요?”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서 “어떻게?”라고 물었다. 지혁이 외할머니댁이 서울과학관 근처라서 가끔 지혁이 혼자 혜화동엘 다녀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쪽 길을 잘 안다고.
지혁이는 아직 선생님이 되지 못한 애송이 초임 교사한테 커다란 교훈을 안겨 준 아이였다. 덩치가 커서 교실의 맨 뒤에 앉아 눈을 껌벅껌벅하며 느린 반응을 보이던 지혁이. 똑똑하고 영리한 아이였다면 혼자서 집으로 갔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겠지만 혼자 집으로 갔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 지혁이.
그래서 교직 생활 내내 ‘선입견으로 아이를 보지 말자.’는 좌우명을 내게 남겼던 나의 스승 지혁이가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내게 운동화를 선물하겠다고 전화한 것이다.
세상에 어떤 선물이 이보다 귀할 수 있으랴.
세상에 어떤 사람이 지혁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랴.
감사는 오히려 내가 지혁이 너한테 해야지. 고맙고 또 고맙다, 지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