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미국에서의 삶은 계속된다.
25년 5월. 드디어 지난 2년 2개월간 지속해 왔던 MBA과정을 마치고, 졸업이란 걸 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일종의 '무모한 도전'이었다. 미국에 여차저차 오게 된 후 미국 이란 사회에 편입하고자 시작하게 된 과정이었다. 경영 관련 전공자도 아니었고, 미국에서 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마흔이 넘어서 MBA를 그것도 미국에서 해보겠다는 건 어찌 보면 자신감을 넘어선 일종의 '객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미국에서 경력이 전무한 내가 이 미국이란 나라에서 인정받으려면 일종의 학위라도 필요했다. 그렇게라도 나는 여기에 처절하게 적응하고 싶었나 보다.
미국 MBA를 준비할 때 가장 까다롭다던 GMAT은 다행히 면제였다. (면제인 학교를 위주로 찾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다만, 한국에 있을 때 연습 삼아 봤던 토플점수가 학교가 요구하는 최소 점수에 아주 살짝 모자란 관계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건부 입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 직장 상사로부터의 추천서 2통, 두 번의 온라인 면접, 장문의 에세이, 대학교 성적표, 이력서 등을 모두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건부 입학'은 한 term에 1과목만 들을 수 있게 총 3개 과목을 들은 후 평점이 최소 B+ 이상 되어야 입학을 허가해 주는 제도였다. 좌충우돌 시작했으나, 다행히 나는 3과목 모두 평균 이상 점수를 획득하여 입학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한 term에 2~3과목을 동시에 들으며 속도를 낼 수 있었다.
*1 term은 8주로 이뤄진다.
내가 들은 과정은 University of Illinois Urbana Champaign 이란 대학의 온라인 MBA과정으로 Full-time MBA과정이며, 이 학교는 2016년에 기존 MBA과정을 100%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iMBA 부문에서는 항상 우수학교로 선정되고 있다. 어찌 보면 발 빠르게 온라인 시대를 미리 준비하여 남들보다 더 안정된 시스템과 우수한 커리큘럼을 갖추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일리노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알아주는 학교 레벨도 선택의 이유였지만, 가장 구미가 당겼던 점은 나처럼 일을 하면서 동시에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온라인' 과정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상당히 합리적이었다는 점이다. 풀타임 과정으로 약 24,000달러 수준인데, 이는 다른 온라인 과정들에 비해서도 거의 반값에 불과한 비용인데, 알고 보니 과거 링컨 대통령이 제정한 법에 의거하여 관련 항목들을 준수하는 학교 정책 덕분에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어서란다. 미국에 와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나에게 더 이상 다른 학교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어로도 낯설고 어려운 회계, 경제학, 통계학 등을 영어로 배운다는 것은 처음엔 상당한 챌린지였다. 용어도 어렵고, 매주 진행되는 라이브 수업과 퀴즈, 과제를 따라가기도 버거웠다. 또한 팀 과제를 위해 모인 팀원들과 온라인으로 영어로 토의하고 과제를 하는 과정이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term이 진행되면서 점차 익숙해져 갔고, 20여 년 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그나마 익숙한 분야인 마케팅, 조직관리 등은 기존의 업무 경험이 상당히 도움이 되어주었다. 특히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를 읽고 본인의 의견을 내야 하는 에세이 타입의 과제가 많았는데, 현장에서의 이러저러한 경험들이 의견을 풀어내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운이 좋아서 인지, 그동안 만난 팀 동료들은 누구 하나 무임승차하지 않고, 모두 열심히 하는 타입들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다들 현직 직장인들이다 보니 책임감도 강하고, 프로페셔널 한 타입들이 많았다.
일 마치고 집에 와서 졸린 눈 부여잡고 동영상 강의 듣고, 과제하고, 주말마다 조별 과제 미팅하고, 과제 제출의 압박에 시달리는 지난 2년 2개월이었다. 특히나 중간에 속도를 내기 위해 한 term에 3과목씩 들을 때는 '내가 과연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결국 졸업자 명단에 포함이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반 시절에는 취업이 시급해서 졸업 앨범 촬영도 건너뛰고, 졸업식에도 가운조차 입치 않은 채 졸업장만 픽업했던 나였다. 이번에는 무언가 기록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졸업 가운도 렌트하고, 집에서 두 시간 반거리의 캠퍼스에 찾아가 졸업식에도 참가하였다. 온라인에서만 봤던 팀 프로젝트 멤버들도 실제로 만나고, 학장님도 보고하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진짜 내가 ‘졸업’이란 걸 하는구나 실감이 들었다.
미국 MBA 졸업장을 땄다고 엄청 좋은 직장에 바로 취업된다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취업에는 전문분야, 경력 등이 더 크게 고려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저런 비즈니스를 운영하면서, 오히려 앞으로 비즈니스에 더 포커스 하고자 하는 마음도 커졌다.
그럴 거면 대학원 학위는 왜 딴 거야?
이런 질문도 몇 차례 받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학위를 갖는다는 것은 취업을 위함을 넘어서는 그 무언가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더 크다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 이제 나도 미국이란 사회에 조금은 더 받아들여진 듯한 기분, 그리고 그동안 생업에 치여서 잠시 접어두었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다는 성취감이 그것이다. 졸업을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래도 무언가 새로운 느낌으로 미국에서의 내 삶은 계속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