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한국 아저씨의 미국 MBA적응기 두 번째 이야기
좌충우돌, 우여곡절 시작되었던 나의 MBA과정이 어느덧 오부능선을 지나고 있다. 사실 시작한 지는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풀타임잡, 개인사업과 병행한다고, 또 초반 3개 과정은 조건부 입학이라서 한 학기에 한 과목만 들을 수 있는 등 그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올 5월부터는 일 하나를 줄여서 제법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한 학기에 3과목씩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학기 중간에 있는 Capstone 과정을 듣고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졸업논문(?) 같은 과정으로, 졸업을 위해서는 총 2개의 전공심화 Capstone과 졸업 직전 전체 Capstone, 이렇게 총 3개의 프로젝트도 추가로 마쳐야 한다. 온라인이니까 좀 설렁설렁해도 되겠지 했던 나에게 이 과정은 너무나도 FM 스러운 이른바 Full-Time MBA였다.
*졸업을 위해선 총 3개의 캡스톤 과정과 4학점 짜리 18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B+ 이상의 학점 유지도 필수조건이다.
한국에서 일반 교육과정을 마치고, 고작 어학연수 5개월 정도 해본 게 전부인 나에게 역시나 가장 걱정되었던 점은 영어였다. 그냥 일상생활 수준의 영어가 아니라, 영어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케이스를 매주 여러 편 읽고 토론도 해야 하고, 퀴즈도 풀어야 하며, 개인과제, 그룹과제도 내야 한다. 한 한기가 2달 단위로 운영되는데, 한 번에 3개 과목을 듣는 순간,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진다. 매일매일 무언가 하지 않으면, 매주 주말마다 과제와 시험의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다시 영어 얘기로 돌아와 보면, 역시나 영어로 수준 높은 비즈니스 케이스를 '읽고', '이해하고', 글을 '쓰고', 강의 콘텐츠 비디오를 '보고', 라이브 수업 시간(줌으로 운영된다)에 참여하여 모두의 앞에서 '말하기'도 해야 한다. 그야말로 영어의 풀 스케일을 요구받는 것이다.
나름 해외 주재원 생활도 해보고, 그럭저럭 영어는 자신 있다 자부했던 편이지만, 영어로 경영대학원을 다닌다는 것은(그것도 영어의 본고장 미국에서!) 상당히 챌린지 했다. 같은 그룹에서 만나는 과정 동료들은 대부분 현직 매니저급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영어의 수준이 (당연한 얘기지만) 상당히 높았다. 로컬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남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접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유려한 영어 발음 얘기가 아니다. 영어로 자신 있게 소통하고, 복잡한 비즈니스 관련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다. 나름 직장 짬밥 좀 있다고 자부했지만, 자신감 있는 학우들(?) 사이에서 가끔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온라인이라서 그 초라함이 다소 적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참고로 학생들의 프로파일은 로컬 미국인이 약 80%, 해외 학생들이 약 20%정도 된다.
처음에는 요령이 부족해서 인지, 속도도 더디었다. 수업 관련 콘텐츠를 Cousera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먼저 다 듣고, 라이브 수업에 참여해서 다양한 토론과 추가 학습을 한다. 그리고 매주 개인 과제 또는 그룹과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해내야 했는데, 한국어로도 어려운 재무, 경제학 관련 내용은 초반에 따라가느라 쉽지 않았다. 그나마 17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던 것이 그래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수업 내용과 관련된 내용을 실제로 직접 경험해 본 적도 있고, 개념을 미리 알고 있는 것도 있어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나는 비경영학 전공자여서 그렇지만, 만약 한국에서 경영을 전공한 사람이고, 직장생활을 몇 년 해봤다면, 아마 훨씬 더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덧 요령이 좀 생기고, 학습에도 속도감이 붙어서 한 학기 3과목도 소화하게 되었다. 동료들을 보면, 풀타임 잡을 하면서, 아이도 키우면서 과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다들 자기 계발과 커리어에서 더 나은 기회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5부 능선을 넘고 나니, 이제 조금 안도의 숨이 쉬워지는 기분이다. 이 속도라면 아마 내년 봄쯤에는 내 인생 최초의 '미국 학교 졸업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도 매일 꿈으로만 그리던 MBA학위를 말이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이 학위를 갖는다고 갑자기 좋은 미국 회사에 떡하니 취업이 될지는 말이다. 회계나 법률, 또는 엔지니어, 디자인 등 특정 전문 분야라면 외국인이 취업하기 더 수월하겠지만, 나는 너무나도 '말빨과 글빨'로 먹고살았던 마케팅, 머천다이저 커리어였다. 그래도 내년에 학위를 취득하고 나면 제대로 한번 문을 두드려 보고 싶다. 40대 중반이 넘는 한국에서 온 아저씨를 그래도 받아줄 미국 회사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자, 중간보고의 결론은! 미국 MBA, 나 같은 사람도 하고 있으니,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평균 학점 아직 A를 유지하고 있다.
도전해 보시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