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랩소디

#미국에서 중국인에게 짜장면 파는 어이없는 이야기

by 마틴팍
어쩌다 보니 사장


“소울푸드가 무엇” 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언제나 ‘짜장면’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주문할 때마다 짬뽕과 살짝 고민이 되긴 하지만.. 이건 사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고민이지 않은가?) 미국에 와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꼬박꼬박 챙겨 먹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던 내가 미국에서 느닷없이 짜장면을 팔게 되었다. 그야말로 예전에 조인성, 차태현이 나왔던 어느 예능 프로 그램 제목이 따로 없다. 어쩌다 보니 짜장면집 사장이다. 그것도 중국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보스턴 남쪽 어딘가 작은 마을에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반 중국집이 아니고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다 보니, 어느 정도 레시피나 요리 과정이 규격화(?) 되어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물론 태어나서 그렇게 큰 웍을 앞뒤로 움직이며(전문 용어로 ‘웍 헤이’라고 함) 조리하는 과정은 처음이다 보니 결코 쉽지 많은 않았다. 마치 골프나 수영을 처음 배우는 사람의 몸이 뻣뻣하듯이, 처음 며칠은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가 한두 시간 만에 지치기도 하였다. 그래도 ‘사장은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 에라도 악착같이 배웠고, 이제 어느덧 모든 메뉴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한국 연예인들과 유명 셰프가 외국에 가서 한국 음식을 메뉴로 현지에서 장사하는 콘셉트의 예능이 많았다. 혹자는 ‘국뽕’이라는 등, 다 사전 섭외한 거다라는 등 폄하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만큼 이제 우리나라 음식으로 예능을 만들 만큼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최근 우연히 ‘현지에서 먹힐까’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한국의 중화요리를 미국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한국식 중국음식인 ‘짜장면’, ‘짬뽕’ 등을 열심히 미국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짜장’ 소스를 보고 처음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 검은 소스가 도대체 뭐냐?’라는 질문도 상당히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샘플을 먹어보라고 권한다. 먹어본 사람 중 90% 이상은 상당히 맛있다며 호감으로 돌아선다. 캐러멜라이즈드되어 달콤한 양파와 양배추, 고기가 씹히는 달콤한 짜장 소스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맛있다고 느껴지나 보다. 인종과 상관없이, 주문한 짜장면을 자리에 앉아 바닥까지 긁어먹고 있는 미국 손님들을 보면 무언가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현지에서 먹힐까에서 맹활약한 존박

중국인들에게 ‘짜장면’은 어떤 느낌일까? 치즈가 잔뜩 들어간 캘리포니아 롤을 좋다고 먹고 있는 미국 사람들을 보는 50년 된 일본 초밥 장인의 기분일까? 몇 년 전 중국 북경 출장 때 현지에서 일하던 후배가 데리고 가줘서 진짜 ‘북경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중화면은 차가웠으며, 그 위에 우리가 먹는 짜장 소스가 동그란 미트볼 모양으로 5배는 압축된 염도를 갖고 올라가 있었다. 막상 비벼 먹으니 그 맛은 상당히 비슷해서 놀랐는데, 우리네 짜장면처럼 야채나 고기가 듬뿍 들어있지 않아서 살짝 아쉬운 맛이었다. 동네 특성상,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의 상당수는 중국계 미국인들이다. 그들은 이미 짜장면에 익숙하며, 그냥 이 음식을 요즘 유행하는 ‘케이푸드’의 하나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중국 본토의 자장면은 요런 느낌

살다 보니 미국에 오게 되었고, 시카고에서는 검은색 커피를 팔고, 온라인에서는 검은색 염색제를 팔고, 이제 보스턴에서 검은 짜장면을 팔아서 먹고살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온갖 검은색 제품을 파는 사장이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

보스턴 가게 근처 울라스톤 비치. 가끔 답답할땐 여기에서 무작정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