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까지 겉으로 판단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
을지로에서 저녁 약속이 잡혀, 근처 북카페를 검색해 보았다. 대형 북카페라는 곳을 찾았고 약속 장소와도 멀지 않아 빠르게 결정을 하고 나설 채비를 했다. 그런데 너무나 익숙한 거리와 건물. 재작년 을지로로 출근하는 동안 매일 지겹도록 지나쳤던, 심지어 한 번은 팀원들과 방문도 했던 카페였다. 역시 알고 보면 다르다고.. '을지로 다녔을 때 알았다면'이라는 짧은 후회를 했지만 이내 '그래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오진 못했을 거야'라며 금방 털어냈다. 책과 사랑에 빠진 채로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된 지금에 감사하며, 디저트 전시장의 무화과 피낭시에를 골랐다. *휘낭시에? 피낭시에? 왜 하나로 불리지 못하는지 찾아보니 F 발음을 일본에서 'ㅎ'으로 발음되어 일본식으로는 '휘낭시에', 본래는 'fㅣ낭시에'라고 한다.
주문한 피낭시에를 받아보니 한쪽에만 무화과가 잔뜩 쏠려있는 것이 아닌가! 이 쏠림 현상을 보며 인생의 불공평함과 부조리 같은 것들과 접해보려다 정리되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책과 사랑에 빠졌다고 나도 책 속에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군' 하며 피낭시에를 겨냥한 포크를 들었다. 달달한 무화과를 아껴먹고 싶어서 밀가루만 있는, 어쩐지 심심해 보이는 부분을 먼저 잘라냈다. 그런데 이럴 수가.. 퍽퍽한 빵뿐일 줄 알았던, 내가 내심 무시했던 빵 속에 무화과가 잔뜩 숨겨져 있었다.
사실 파티시에를 믿고 있었다며 빠르게 태세 전환을 하다, 문뜩 '나는 아직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구나.' 어리석다며 자기반성에 들어갔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 고찰하겠다더니 이제는 빵까지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다니. 아직 멀었다. 하지만 또 이내 생각을 바꿔본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빵 속에 잔뜩 담겨있는 무화과를 보니 어땠는가? 예상되는 기쁨보다 예상되지 않는 기쁨의 전율을 느끼지 않았는가? 어쩌면 사람도 이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속이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매력에 더 깊게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을 찾고 싶다.. 아니 먼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나는 겉과 속 둘 다 챙기고 싶은 욕심쟁이이지만.
2023.12.02. 을지로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