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문제는 내가 다리를 잘 쓰지 않는 사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잘 걷지 않는다. 아주 가까운 거리라도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걸음 수는 더 줄어들었다. 그러다 문득 상금이 걸린 만 보 걷기 챌린지를 보고 홀린 듯 신청했다. 브런치 작가가 된 기념으로 이참에 걸으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보자 했지만.. 지금 1시간째 한강을 거닐며 한 가지 생각만 든다.
과거의 나. 기절시키고 싶다.
이 챌린지는 일주일에 3번, 만 보가 넘은 걸음 수를 인증하는 방식이다. 근데 챌린지가 시작된 날부터 독감에 걸려서 골골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만 보 걷기마저 벼락치기로 하는 내 인생.. 레전드. 다행인지 아닌지 집 근처에 한강 공원이 있다. 가끔 날씨가 좋은 날이면 이 한강 공원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곤 했는데, 이때도 걸을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걷는다는 건 내 선택지에 읍어요~ 예..)
나에게 걷는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비효율적인 일이었으니까. 언제부터 나도 이렇게 효율을 미치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걷는 것보단 자전거, 자전거보단 버스, 버스보단 전철.. 그렇게 효율적이라 믿는 탈 것에 의존하며 살아가다 보니, 내 다리는 이제 걷는 것보다 탈 것에 실려있는 게 더 익숙해진 모양이다. 고작 1시간 걷고 누워있고 싶은걸 보니..
처음에는 만보를 언제 다 걷나 싶어, 좋아하는 YouTube 영상을 틀어놓고 하염없이 영상 속에 빠져서 걸었다. 문득 보이는 풍경과 사람들도 잠시 뿐, 다시 미디어에 나를 맡겼다. 5000보(절 반)를 걷고 온 길을 되돌아가면 끝이라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 이어서 볼 영상들을 찾아보다 슬 지고 있는 하늘이 예뻐서, 전철 소리가 낭만 있어서, 이어폰을 빼고 이 것들을 누리며 걸어가 보자고 다짐했다.
시선을 현실로 돌리니 하나 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생겼다. 나처럼 하염없이 걷고 뛰는 사람,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타는 아부지,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어주는 할아버지... 귀한 주말에 무엇이 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한강 공원으로 불렀을까? 나처럼 챌린지 때문은 아니겠지?
걷다 보니 과거의 나에 대한 원망 말고 드는 생각이 있다. 걷는다는 건 효율과는 별개의 장점이 있구나. 바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얕고 길게 하던 고민이 한순간에 결론이 나기도 하고, 이런저런 흘러가는 생각을 마음껏 하며 또 다른 집중력을 키우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산책 길로 돌아가기도 하면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려 한 나의 작은 도전을 기특해하기도 했다.
나 그동안 효율 속에서 정작 나를 잊어가고 있었구나. 한강을 걸으며 스쳐 지나간 모든 이들이 상기된다. 그들도 결국 자신을 위해 나왔겠구나. 한참 이런 생각에 빠져들 때쯤, 만보 축하 알림이 울린다. 멈춰있는 영상 위의 알람을 확인하고 다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집으로 마저 걸으며 소중한 주말을 자신을 위해 쓰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끝으로 급할수록 천천히, 이 말을 나는 불안에 대입하고 싶다. 불안할수록 천천히. 그래야 긴 불안의 터널에서 벗어났을 때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은 지금 불안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서둘러 불안을 떨쳐내려고 하지 말자. 효율적인 선택이 아닌 나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