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생활
인간은 수많은 시간 동안 변화하는 무수한 환경과 문화에 적응해 가며 진화해 왔다.
그렇게 많은 진화를 거듭한 끝에 현재 지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바로 포기형 인간이다.
요즘 사회는 인간이 무언가를 끈질기게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고, 사랑은 이제 짧은 기다림이 주는 설렘마저 느낄 틈을 주지 않게 되었으며, 우정은 친구 사이에도 눈치를 보게 만드는 개인주의가 되어 버렸다.
무언가를 이루기보단 지키기에 급급한 세상
그 속에서 지쳐가며 상처받고 그 상처와 실패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뒷걸음질을 치게 되었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이제는 작은 감정 낭비마저 견뎌낼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이 너무 무섭게만 느껴지는 인간에게 발현된 방어기제가 어쩌면 ‘포기’가 아닐까.
포기가 쉬워진 요즘은 포기의 근거로 타인의 말 또한 크게 작용한다. 직접 시도하는 것보단 다른 이의 경험을 토대로 나 또한 포기하는 것, 그렇다면 그 다른 이의 포기 근거는 전부 자신의 경험일까.
도전과 시도는 차이가 크다. 쟁취를 위해 어려움에 싸우는 것이 도전이라면 시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겨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조건 적인 포기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 아닌, 적어도 그 포기의 기준이 경험을 토대로 스스로가 세운 기준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실패는 없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꾸준히 진행형이므로 실패는 오지 않고 언젠가는 성공한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말이지만 혹여 다른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희망고문 같은 말이 될 수도 있다.
한 가지의 예를 들자면,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의 끈기와 열정은 분명 대단하고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각자의 가정에 정수기를 두는 요즘 시대에는 그 사람의 우물은 그렇게 환대받지 못할 것이다.
직접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며 포기하는 사람은 눈을 가리고 다른 이의 말만 들으며 길을 나아가는 것이고 시대의 흐름이나 환경을 파악하지 못하고 한 길만 가는 사람 역시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진다. 그 시야를 넓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 방법이 바로 경험, 즉 시도일 것이다.
'포기'라는 것은 뛰어난 결단력과 판단력이 필요한 결코 쉽지 않은 행동이다. 근데 요즘을 보면 그 어려운 포기가 그토록 쉬워졌으며, 어떻게 가벼운 '시도'가 그렇게까지 망설여지고 어려워졌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문고리를 돌리기 전까지는 문이 잠겨 있는지 알 수 없고 열쇠를 넣기 전까지는 자물쇠가 열리지 않을지는 알 수 없듯이 시도란 우리에게 사실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시야를 확장시켜 주며 무거운 도전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실현이 가능한지 테스트를 해보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시도는 성공으로 직결되지는 않지만 확률을 올린다.
인간으로서 시도를 앞둔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