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지구를 탈출하는 마케터를 위한 안내서

10화.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갔다고?

by 김보영

10화.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갔다고? 아니, '엘리베이터'를 탔을 뿐이다.


지난주, 우리는 고객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 브랜드와 하나가 되는 뜨거운 '핵(Core)'의 단계를 이야기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게임 끝난 거 아니냐고? "이제 결제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동화책이다. 현실의 비즈니스는 스릴러 아니면 피 튀기는 누아르에 가깝다.


특히 B2B 마케터나 영업 담당자들, 가슴 한구석에 눈물 없이는 못 보는 슬픈 영화 한 편씩 찍어두지 않았나? 제목은 바로... <반려의 추억>.


상황을 한번 복기해 보자. 실무 담당자(Champion)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우리 솔루션에 완전히 반해서(Core 진입), "팀장님, 이거 아니면 우리 팀 미래는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우리는 샴페인을 터뜨린다. "아, 드디어 이번 분기 매출 찍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담당자가 세상 무너진 표정으로 나타난다. 손에는 차갑게 식은 결재판이 들려 있다.

"저기... 상무님이 예산 없다고 까셨는데요(반려)."

"재무팀에서 타사 견적 3개 더 받아오라는데요(재검토)."


자, 이 순간 담당자는 어디에 있는가?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 뜨거운 '핵' 속에서 뒹굴었는데, 순식간에 차가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저 위쪽 '맨틀(비교/검토 단계)'로 튕겨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깔때기 모델이 절대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 '수직 왕복 운동'이다.


깔때기는 미끄럼틀이다. 한번 내려가면 다시 못 올라온다. 떨어지거나, 이탈하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Sphere(구체)의 세계는 마치 '엘리베이터'와 같다. 버튼 하나로 언제든 지각과 핵 사이를 왕복한다.


가만 보니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맞다. 바로 연애할 때 피 말리는 '밀당(밀고 당기기)'과 똑같다.


"나 너 좋아(Core)"라며 다가오더니, 갑자기 "우리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Mantle)"라며 멀어진다.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고(상승), 놓아주려 하면 다시 찔러보는(하강) 그 지옥 같은 엘리베이터 게임 말이다.


B2C라고 다를까? 장바구니에 물건 잔뜩 담고 결제 버튼 누르기 직전(Core), 뒤에서 "여보, 이번 달 카드값 봤어?"라는 배우자의 한마디가 들려온다. 그 순간 고객의 우주선은 빛의 속도로 지각(Crust)까지 급부상한다. "아... 나중에 사야겠다."


많은 마케터가 이 시점에서 멘탈이 나간다. "아니, 다 잡은 물고기였는데!"라며 고객을 원망하거나, 아예 실패한 건(Lost Deal)으로 처리해 버린다. 심지어 '차였다'고 생각하고 술을 푼다.


하지만 Sphere의 관점에서 이건 이별 통보가 아니다. 그저 엘리베이터가 잠시 위층으로 올라갔을 뿐이다. 부력이 작용한 것이다.


연애 고수는 상대가 밀어낼 때(Push) 징징거리지 않는다. 대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명분을 툭 던져준다(Pull). 우리도 똑같다. 위로 붕 떠오른 고객에게 무거운 '납덩이(명분)'를 쥐여줘야 다시 깊은 곳으로 가라앉을(Dive) 수 있다.

상무님에게 깨지고 온 담당자에겐: 임원들이 좋아할 만한 'ROI 분석 보고서'나 '경쟁사 비교 우위표'라는 납덩이를.

카드값 걱정하는 남편에겐: "지금 사는 게 할부 이자보다 이득"이라는 '합리화의 명분'이라는 납덩이를.


고객은 언제든 위로 떠오를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다시 내려올 명분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것. 그게 우리 마케터가 해야 할 '산소통 지원' 업무다.


여러분의 고객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혹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에 누군가(상사, 배우자, 통장 잔고)가 '열림' 버튼을 누르진 않았나?


자, 지금까지 우리는 고객이 위아래(수직)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런데 이 행성이 가만히 멈춰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잊지 않았겠지? 행성은 돕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다음 주에는 이 회전하는 행성 위에서 '타이밍'을 놓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Sphere의 '시간(자전)'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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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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