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 이런 댓글이 있다.
"오 기억해뒀다가 필요할 때 까먹어야지."
베스트 댓글이다. 좋아요가 수천이다.
웃긴데 슬프다. 슬픈데 너무 정확하다.
긴 영상을 나중에 볼 영상으로 저장해두는 사람도 있다.
당장 내 소중한 여가시간을 투자하기엔 아깝지만
내 인생에 필요할 것 같은 영상.
그리고 그 영상 밑에도 베스트 댓글이 달린다.
"나중에 볼 영상."
좋아요가 높다.
우리는 지금 지식을 얻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식을 얻었다는 기분을 사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를 손에 쥔 시대를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누군가 평생 걸어서 도달한 결론에 접근할 수 있다.
저장 한 번으로 수백 개의 통찰을 내 폴더 안에 쌓아둘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건 정보는 많아졌는데 지혜는 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정교해졌지만 삶은 더 흐릿해진다.
저장 목록은 쌓이는데 실제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저장은 소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마크는 "나는 이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불안에 대한 응답이다.
언젠가 이것을 모르는 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공포.
저장 버튼을 누르는 그 찰나, 우리는 잠깐 안도한다.
챙겼다고. 확보했다고.
그런데 그 안도는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얻어야 한다는 불안을 잠시 봉합한 것이다.
반창고를 붙인 것이다.
아는 게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
이 낡은 질문을 붙잡고 고민하던 내가 민망해졌다.
저 베댓에 좋아요를 누르는 수천 명의 손가락을 보며
그리고 나조차 그 댓글에 낄낄거리는 걸 보며 깨달았다.
나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고민할 단계조차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
우리가 이름 붙이지 않은 애매한 상태가 더 존재한다.
저장했지만 읽지 않은 것.
들었지만 흡수하지 않은 것.
체크했지만 통과하지 않은 것.
그것은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알기로 마음만 먹은 상태다.
결정은 했지만 실행은 없는 상태.
가장 편안하고, 동시에 가장 아무것도 아닌 상태.
아는 척은 할 수 있다. 링크를 보내줄 수도 있다.
"나 그거 저장해뒀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위기의 순간, 실제로 그것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장된 지식은 내 영혼에 새겨진 문신이 아니라,
포장도 안 뜯고 창고에 넣어둔 새 운동기구 같은 거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쓸모없는(?) 운동기구를
자꾸만 창고에 채워 넣는 걸까
그건 사실, 운동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운동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도망치고 싶어서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은 보통 무지의 행복으로 읽힌다.
몰라서 편하다고.
그런데 다르게 읽히는 지점이 있다.
알아버리면 움직여야 한다.
알고도 안 하면, 그게 더 아프다.
알고도 못 하면, 그게 더 무겁다.
알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들볶는다.
모르면 적어도 그 죄책감은 없다.
저장만 해두는 것은 알았다고 체크는 했지만
당장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이라는 말은
사실 하지 않겠다는 말의 다른 이름이다.
그 안일한 마음들이 켜켜이 쌓여,
내 계정은 읽지 않은 지식들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된다.
"나중에 필요할 때 보려고." 이 말 안에는 안일한 함정이 숨어 있다.
우리는 필요한 때가 오면 여유롭게 폴더를 열어 정답을 꺼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때란,
이미 그 문제의 파도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순간이다.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조짐을 느낄 때 우리는 불안함에
'마음 다스리는 법'이나 '문제 해결법' 영상을 찾아 북마크를 누른다.
하지만 실제로 내 세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찰나에
"잠깐만, 나 예전에 저장해둔 영상 좀 보고 올게"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식은 필요하기 전에 이미 내 몸의 근육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응급 상황의 의사가 교과서를 펼치지 않고,
급커브를 만난 운전자가 조작법을 검색하지 않듯,
지혜는 위기의 순간에 검색되는 것이 아니라 반사되어야 한다.
저장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저장이 소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다만 저장이 소화의 완료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이것을 저장하는가,
아니면 이것으로부터 도망치는가.
이 영상이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요구를 지금 감당하기 싫어서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는 게 힘이 되려면 그 지식이 나를 관통해야 한다.
관통한다는 것은 불편하다는 뜻이다.
나의 무언가와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 충돌을 지금 감당하지 않는 한,
저장 목록은 늘어나도 나는 늘지 않는다.
"오 기억해뒀다가 필요할 때 까먹어야지."
이 댓글이 베스트인 이유는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맞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도. 그런데도 멈추지 못한다는 것도.
북마크는 오늘도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