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하며 되새긴다.
어린 시절 나는 순수했다.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착하다고 생각했다.
노력하면 다 된다고 여겼다.
진심이라면 다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이건 순수함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몰랐던 것일까?
현재의 나는 지금도 순수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순수함을 절대 잃지 않길 원한다.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고
사람들 중엔 악한 사람도 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수하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
자신의 세계를 둘로 나눈다.
밝은 세계: 부모님, 가정, 교회, 질서, 선
어두운 세계: 거리, 술집, 범죄, 혼돈, 악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이 전부라고 느낀다.
알 속의 순수함.
안전하고 편안하고 의심이 없다.
하지만 헤세는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무지의 순수함은
진짜 순수함이 아니다.
아직 시험받지 않은 순수함이다.
어느 날, 싱클레어는
동네 불량배들의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강한 생존 본능과 열등감으로 인해
자기가 과수원에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한다.
그런데 불량배 크로머가 그 거짓말을 믿고 협박한다.
"부모님한테 말할까? 아니면 나한테 돈 줄래?"
싱클레어는 추락한다.
밝은 세계에서 어두운 세계로.
알이 깨지는 순간이다.
처음으로 악을 경험한다.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나는 타락했다."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에서
"에고는 과거의 축적입니다.
당신이 겪은 일과 상처들,
기억들이 쌓여서 에고를 만듭니다."
싱클레어의 경우,
앞선 경험이 첫 번째 에고의 층이 된다.
"나는 거짓말쟁이야."
"나는 비겁해."
"나는 더럽혀졌어."
이 층이 쌓이고 쌓이면,
순수함은 완전히 묻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멈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순수하게 살 수 없어."
체념, 냉소, 포기.
"어릴 때는 순수했지.
그런데 세상이 날 더럽혔어."
그렇게 스스로를 가둔다.
하지만 진짜 순수함은
이 오염의 한복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싱클레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또래지만 여타 아이들과는 다른
어른 같은 눈빛의 데미안이 등장한다.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는 포식자였지만,
데미안이라는 '진짜 강한 영혼' 앞에서는
한낱 겁쟁이로 전락한다.
데미안은 크로머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크로머는 그 시선에 압도되어 스스로 물러난다.
싱클레어는 크로머가 사라지자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부모님의 '밝은 세계'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차갑게 일침을 가한다.
"너는 이제 예전의 너로 돌아갈 수 없어"
"세상은 밝음과 어둠으로 나뉘지 않아. 그건 거짓말이야."
싱클레어는 혼란스럽다.
"그럼 뭐가 진실이에요?"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우리가 숭배해야 할 신은 세계 전체를 포함해야 한다.
선과 악을 모두.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아브락사스.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진 신.
"네 안에도 빛과 어둠이 있어. 둘 다 너야."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만 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실현하려 한 모든 시도는,
그것이 아무리 고귀해 보여도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그저 자기 자신이 되기 그것은 부모가 원하는 자아도,
사회가 기대하는 자아도 아니다.
빛과 어둠을 모두 가진, 온전한 자기 자신.
나는 그 여정을 시작했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순수함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다.
"고통은 현재 순간에 대한 저항에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순수함을 잃는 건 저항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배신했다. 그 사실 자체는 그냥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저항하고 부정하며 그 사실에 집착했다.
그리고 그것이 고착되어 에고의 또 다른 층이 된다.
톨레는 말한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받아들이는 것 이게 발수코팅의 비밀이다.
연꽃잎에 물이 튄다. 연꽃잎은 저항하지 않는다.
"왜 나한테 물이 튀냐" 하고 화내지 않는다.
그냥... 물이 튀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다.
저항이 없으니 고착이 없다.
톨레는 또 말한다.
"에고는 당신이 아닙니다. 에고는 당신의 자기상일 뿐입니다."
흙탕물이 튄다. 하지만 나는 더럽혀지지 않는다.
"나는 배신당한 사람이야" 이건 에고다. 자기상이다.
진짜 나는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있는 존재다.
배신은 과거일 뿐 분노는 저항이며 고통은 고착이다.
그저 모두 흘려보낸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작은 별 B-612에서 온다.
그 별에는 장미 한 송이가 있다.
어린 왕자는 그 장미를 사랑한다.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세워주고, 투정을 들어준다.
그 장미가 세상에서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구에 와서 보니, 장미가 5000송이나 있다.
충격을 받는다.
"내 장미는 평범한 장미였어..."
하지만 여우가 나타나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리고 길들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가 네 장미에게 쓴 시간이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거야."
어린 왕자는 깨닫는다.
세상에는 5000송이 장미가 있다.
하지만 내 장미는 특별하다.
여우는 또 말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해.
가게에 가서 다 만들어진 물건을 사지.
하지만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으니까,
사람들에게는 친구가 없어."
2026년, 우리는 더욱 시간이 없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결과 중심으로.
하지만 순수함은 비효율적이다.
시간이 걸린다. 즉각적인 결과가 없다.
아무 보답이 없는 장미에게 매일매일 물을 주는 것
그것이 순수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심을 만든다.
나는 매일 나만의 장미에게 물을 준다.
《데미안》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 싱클레어는 부상을 입는다.
야전병원 침대에 데미안이 나타난다.
"만일 네가 다시 나를 필요로 하면...
네 안을 들여다봐. 내가 네 안에 있을 거야."
싱클레어는 깨닫는다.
데미안은 외부에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순수함도 그렇다.
외부의 흙탕물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우물이 있으니까.
생텍쥐페리는 말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순수함은 외부 환경에 달려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톨레는 말한다.
"당신이 현재 순간에 완전히 깨어 있을 때,
모든 것이 변합니다.
작은 불꽃이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 불꽃. 그것이 순수함이다.
어릴 때의 무지한 순수함이 아니라.
세상을 보고, 더러운 것도 경험하고, 상처도 받았지만.
그럼에도 자기중심을 지킨 순수함.
진화한 순수함.
헤세의 싱클레어는 방황했지만,
끝까지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의지를 놓지 않았다.
톨레가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 머물렀다.
어린 왕자의 내 장미를 잊지 않았다.
그게 중심이었다.
나도 그렇다.
남이 세운 중심이 아니다.
부모가 원하는 것,
사회가 기대하는 것,
남들이 하는 것이 아닌
자기가 세운 중심.
헤세: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이어야만 한다."
톨레: "당신은 이미 완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
생텍쥐페리: "네가 네 시간을 들인 것이 너를 정의한다."
중심이란
"나는 이것을 믿는다."
"나는 이것에 시간을 쓴다."
"나는 이것을 지킨다."
연꽃잎의 발수 효과는 나노 구조 덕분이다.
표면에 미세한 돌기들이 빽빽이 나 있다.
물방울이 표면에 직접 닿을 수 없고 점접촉만 일어난다.
그래서 물은 동그랗게 맺혔다가 굴러 떨어진다.
초연의 순수함도 마찬가지다.
중심이 견고하면 흙탕물이 스며들 수 없다.
점접촉만 일어난다. "아, 이런 일이 있었네." 그리고 굴러 떨어진다.
고착되지 않는다.
톨레의 표현:
"당신이 현재 순간에 뿌리박고 있을 때,
과거와 미래는 당신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현재 순간들은 나노 구조로 구성되어 있고
과거의 상처가 흙탕물이라면
현재에 뿌리 박혀 있으면,
과거가 스며들 수 없는 것이 된다.
여전히 세상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흙탕물로 가득하고
원하지 않게도 흙탕물을 맞는 일이 빈번하다.
비교와 질투. 분노와 절망. 배신과 상처. 압박과 불안을 느끼며
세상이 이렇게 더러운 줄 몰랐다고
무지의 순수를 가진 이는 여기서 무너지지만,
초연의 순수함을 가진 사람은 안다.
무지에서 시작해서,
오염을 겪고,
투쟁하고,
수용하고,
초연에 이르고,
마침내 통합된다고.
나는 죽을 때까지 완벽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흙탕물에 젖다 못해
빠져 허우적대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면 된다.
내 안의 우물을 길어 올려
장미에게 물을 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