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가 1,300만을 넘었다. 그리고 표절 시비가 붙었다.
세간의 주목이 커질수록 그 빛이 닿지 않던 자리도 선명해진다.
조명이 밝아질수록 무대 밖의 어둠도 짙어지는 것처럼.
2019년 세상을 떠난 연극배우의 유족이 나섰다.
고인이 생전에 쓴 미발표 시나리오와 설정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단종이 음식을 먹는 장면, 낭떠러지 장면,
아들이 압송되는 전개. 최소 일곱 가지.
유족이 원한 건 돈이 아니었다.
크레딧에 아버지의 이름을 올리는 것 뿐이었다.
판단하기 전에 먼저 멈춰야 했다.
평생 쓴 것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묻혔는데,
비슷한 이야기가 1300만 영화가 됐다.
그 마음이 이해됐다.
역사적 소재는 누구나 쓸 수 있고,
비슷한 설정이 표절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그것도 이해됐다. 그래서 질문이 남는다.
창작에서 소유란 무엇인가.
엄흥도는 조선 초기의 실존 인물이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
역적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한 사람.
그 이야기는 수백 년째 흐르고 있다.
누군가 먼저 썼고, 누군가 나중에 썼고,
앞으로도 누군가 쓸 수도 있다.
역사는 소유되지 않는다.
그 이야기를 먼저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 아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항상 있다.
같은 소재, 비슷한 장면, 유사한 멜로디.
세상을 둘러보면 이래도 있고 저래도 있다.
아이디어는 어느 날 공기 중에 떠돌다
누군가에게 내려앉는 것일지도 모른다.
법적으로는 선이 있다. 저작권이 있고, 등록이 있고, 크레딧이 있다.
그런데 창작의 실제는 그 선 위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스승의 그림을 수백 번 따라 그리며 배웠다.
정밀하게, 거의 똑같이. 그게 수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화풍이 생긴다.
스승의 선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선이 달라져 있었다.
그걸 표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바흐의 선율에서 브람스가 영감을 얻었고,
브람스에서 또 누군가 가져갔다.
클래식의 역사는 영향의 연쇄다.
어디까지가 영감이고 어디서부터 표절인가.
다들 그 선이 있다고 믿는다.
근데 그 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핵심은 그걸 자기 안으로 얼마나 깊이 끌고 들어갔는가.
껍데기만 가져왔는가,
아니면 그 안을 지나오면서 무언가 자기 것이 생겼는가.
음악을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에 선생님은 나를 못마땅해했다.
누구랑 비슷하다. 또 누구를 흉내낸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 사람들 때문에 시작한 거고
당연히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어느 날 한동안 나를 괴롭히는 말을 들었다.
쪽팔린 줄 알아라.
음악 한다는 놈이 남의 노래로 먹고 사는 게 말이 되느냐.
그게 처음부터 남의 것이었다.
그러면 내 것이 된 순간은 언제인가.
그 순간이 있긴 한가.
껍데기가 같아도 그걸 통과한 사람이 다르다.
유족의 마음을 내가 헤아릴 수는 없다.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누군가의 음악을 듣고 시작했고, 수없이 흉내 냈다.
그 모방의 늪을 지나 어느 순간 내 색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게 정말 내 것이 되었는지 확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껍데기는 베낄 수 있지만, 그 안을 지나오며
내 몸에 남은 얼룩과 빛깔은 베껴지지 않는다.
본질은 결국 만드는 사람의 내면에서 결정된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엄흥도 이야기는 수백 년째 흐르고 있다.
그 강물 어딘가에 2019년에 세상을 떠난 연극배우의 고독한 시간도 분명 섞여 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못했을지라도 그가 이야기를 품고 보낸 시간만큼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그의 것이다.
창작에서 소유란 무엇인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지식은 먼저 깃발을 꽂는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품고 가장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흔적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강물 어딘가에 내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내가 이 길을 걸으며 물들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