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새해의 느낌이 무뎌졌다.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일들에 내 나이도 감각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새해 목표를 적던 때가 있었다. 연초에 하루종일 침대에 엎드려서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만족감을 느꼈다.
목표를 적지 않아서 새해의 느낌이 무뎌졌는지. 새해의 느낌이 무뎌져서 목표를 적지 않았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삶에서 큰 목표를 정하는 것의 무용함을 갈수록 느낀다. 그보다는 삶의 의미를 좇는 과정에서 - 케세라세라는 아니지만 - 하루하루에 충실하고 싶다.
지난 5월의 어느 날. 출판사를 다니는 친구와 후암동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한 재즈 바에서 공연을 보며 얘기하던 도중, 친구는 내게 글을 써보라 권했다. 그러고는 핸드폰을 검색하더니 들을만한 강의를 추천해 줬고, 난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결제했다.
6월의 어느 날. 소설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신촌에서 진행되었는데, 내가 지내는 곳에서는 두 번의 환승을 거쳐 왕복 3시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내 방황의 종지부를 찍어줄 마지막 동아줄처럼 수업을 다녔다.
격주로 3페이지의 미니픽션을 써보고, 마지막엔 단편 소설을 한 편씩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 수업이었다. 하루는 밤을 새워서 글을 쓴 뒤 몽롱함을 가시고자 커피를 마시는데 행복했다. 출근해서도 힘이 솟았다.
신기루처럼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질까봐 덜컥 두려웠다. 밤하늘의 달을 볼 때. 혹은 성당에 갔을 때 - 처음 가는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소원은 모두이루어진다는 속설을 믿고 - 빌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수많은 빗물로 가득했던 8월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났다. 수강생 중 한 명이 수강생끼리 소설 스터디를 하는 것은 어떻냐 제의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모든 수강생이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다.
스터디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소설을 합평받았다. 내 차례까지 한 번 돌고 나자 가을이 되었다. 스터디의 리더가 신춘문예에 내보자 제안했다. 내게도칭찬을 하며 내보자 했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다.
대신 대학원에 원서를 넣었다. 출근해서도, 퇴근해서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모든 정신이 글쓰기에 집중되었다. 여태껏 썼던 세 편의 단편 소설 중 두 편과자기소개서를 첨삭했다. 예비군을 가던 날 등기를 부쳤고, 1차를 붙었다.
면접 준비를 위해 퇴근하자마자 도서관, 알라딘 중고서점, 교보문고에서 살았다. 막연했던 내가 쓰고 싶은 글에 대해 고민했다. 면접관들 앞에서 기죽지 말자 다짐했다. 나중에 같은 작가로서 얘기를 나눌 사람들이라고.
면접은 1:5로 진행되었다. 책으로만 보던 작가들 앞에서 얘기를 하려니 벅차올랐다. 너무 설렜다. 더욱 간절해진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숨을 한번 골라야 했다.
퇴근하고 짜장면을 먹으며 최종 결과를 확인했다. 불합격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첫술에 배부르고 싶은 사람이었다.
발표 후 한동안은 읽지 않고 쓰지 않았다. 문득 대학원은 내가 글을 쓰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달을 보고, 성당에 가서 글 쓰는 것을 멈추지 않게 해달라 비는 나의 마음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주부로 지내오다 마흔을 넘어 곧바로 장편소설을 써냈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많이 읽으면 쓸 수 있다 했다.
나의 새해 목표는 많이 읽고, 많이 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