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표류기
세계여행을 인천공항에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출발지가 꼭 김포공항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인천공항만큼은 아니기를 바랐다.
행선지로 어디를 갈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한국에서 남미로 가는 직항이 없었기에 유럽이나 미국 같은 대륙을 경유해야 했다. 처음엔 동해에서 배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넘어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핀란드에 가서 크리스마스 마을에 가고, 무민과 함께 연말연시를 맞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동창과의 만남으로 행선지를 뉴욕으로 바꿨다. 타임스퀘어 앞의 볼드랍 때문이었다.
친구는 볼드랍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새해를 시작했던 짜릿함을 얘기해 줬다.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비욘세 같은 유명인들이 공연을 하고. 인종도, 언어도, 나이도, 생김새도 모두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10초 동안 한 마음으로 카운트 다운을 외치며. 하늘에서 거대한 공이 내려와 터진 후 사람들이 환호하는 장면을.
나는 뉴욕을 경유해 남미에 가기로 결심했다. 집에 오자마자 김포-베이징-뉴욕 비행기를 끊었다. 누나집에서 김포공항까지는 1시간 반 남짓이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 김밥을 먹은 후 출국했다.
중국은 특이하게도 경유하는 승객 역시 보안 검사를 실시했다. 보안 검색대의 줄은 엄청 길었다. 나는 짧은 줄을 찾아 요리조리 지나갔지만, 내 짐이 나오지 않았다. 배낭에서 노트북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줄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서야만 했다.
황급히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자마자 부리나케 보딩 카운터로 달려갔다. 하지만 비행 통로는 닫혀있었다. 내 눈앞에 항공기와 승무원들이 있는데, 마감 15분 전에는 카운터를 닫아버린단다. 절대 열어줄 수 없단다. 거대한 통유리 앞에 코를 바짝 대고 떠나지 못한 채 서 있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학 동기였다. 나는 순간 한국에 있는 건가 의심했다.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뉴욕에 가는 비행이었는데 놓쳤다고 했다. 친구 무리와 나는 항공사 카운터로 이동했다. 그녀들은 이 비행을 놓치며 손해 본 뮤지컬에 숙박비를 계산했지만, 난 예약해놓았던 것이 없어서 별 생각이 없었다.
다행히 항공사에서는 경유 편을 놓친 승객들에게 호텔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는 임시 비자를 발급받고 짐을 찾으러 갔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짐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불안한 마음에 항공사 카운터에 가봐도, 뉴욕 가는 비행기에서는 빠졌으니 기다리란다. 우리 옆에 한 일본인도 다가와 짐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기다린 끝에 짐을 찾고 공항을 나설 수 있었다.
항공사에서 제공해 준 호텔은 베이징의 최외곽에 있었다. 무거운 나무 문을 열고 객실에 들어가니 바퀴벌레가 흰 욕조 바닥을 재빠르게 기어갔다. 나는 짐을 열지도 않고 현관에 세워둔 채 곧바로 뛰쳐나왔다.
중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났다.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였다. 다행히 친구가 시간이 되어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한국에서 만났을 땐 친구의 머리가 많이 짧았는데 그새 많이 길었고 내 머리는 많이 짧아졌었다. 친구와 헤어진 후 객실로 돌아와 샤워를 한 뒤 바퀴벌레 소리가 나진 않는지 생각하다 바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