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가기까지
제주에 가겠다는 결심이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겠다는 마음 뒤로는 수많은 선택, 결정이 기다렸다. 애초에 제주에 가고 싶다는 마음에 무작정 설레발을 친 게 문제였던 건가.
제주도를 언제 가면 좋을까, 어딜 가면 좋을까, 뭘 해야 할까, 얼마나 있어야 할까, 숙소는 어떻게 할까, 1인실이 나을까, 다인실이 나을까, 밥은 어디서 먹을까, 한 끼에 얼마면 될까, 캐리어는 어떤 걸 챙겨야 하나. 끝없는 질문이 맴돌았고, 마침내 그때그때 해결하겠다는 소심하면서도 용감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계획대로 되는 일이라곤 하나 없다.
우선 6박7일로 가자. 어디를 갈지도 정하지 않고, 버스로 움직일 수 있을 법한 위치에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동쪽을 돌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의 절반은 나 혼자, 절반은 지인들과 보낼 숙소를 찾았다. 이왕이면 다 해보자는 생각에 1인실부터 6인실까지 골고루 숙소를 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뚜벅이가 겁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서 더 알찼던 것 같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 : 뚜르드 제주 - 각자의 섬 - 함덕옆집 - 서점숙소 - 서점숙소 - 토다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대략적인 여행 일정에 최적화된 위치에 있으면서 동시에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마음이 편하다는 기준이 애매하거나 혹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냐 물을 수 있겠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마음이 편한 상태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에 불과하다. 불만보다는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으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생길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아주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렇게 선정한 숙소가 총 5군데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펼쳐나가보려 한다.)
제주에서 6박7일 머물 곳까지 예약을 하고 나니, 정말 지금 내가 매일 앉아 있는 방을 떠난다는 게 실감났다. 그토록 바라던 제주에 간다니, 너무나 기쁘던 것도 잠시 곧바로 걱정이 한가득 밀려왔다. 왜냐, 난 소심한 길치니까. 사서 걱정하는 사람이니까. 캐리어 무게부터 일주일 입을 옷까지. 하나 하나 다 고려하며 상비약까지 챙긴 후에야 나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는 게 실감났다.
머물다 못해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오래 앉아 있던 방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겁이 나기도 했다. 막상 앉아 있다고 글을 술술 쓸 것도 아니면서, 괜히 ‘지금 제주도를 가도 되나’ 같은 걱정을 사서 하고 있었다. 일주일 머물 짐을 다 꾸려놓고도 정작 내 마음은 떠날 준비를 하지 못했다. 여행은 결국 마음 속에 가득 채워 올 빈 캐리어를 하나 챙겨 가는 일인데 말이다.
캐리어 앞에 한참 앉아 겁을 내고 있었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선 제주에 가도 내 영혼은 집에 머물러 의미도 재미도 없는 글을 습작하고 있겠구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육체는 제주에, 영혼은 집에 머무르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결국 태블릿을 챙겨 가는 일로 마음의 짐을 덜기로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여행을 가서도 노트북을 챙긴다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태블릿을 가방에 넣고서야 비로소 제주도를 갈 준비를 마쳤다. 정말 글이 술술 써질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몇 글자라도 적어 오면 다행 아니겠는가…. 무엇을 할 건지도, 글을 놓고 쉬다 오겠다는 확신도 없었다. 그저 씩씩하게 다녀오기만 하면 된다는 막연한 너그러움만 남겼다. 그게 좋겠다며, 씩씩한 겁쟁이는 제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