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제주를 마지막으로 간 게 스무 살이다. 마지막이라 해야 하는가, 처음이라 해야 하는가. 그 이후로도 몇 번이고 여행을 가겠다 다짐했건만 코로나가 터지면서 갈 수가 없었고, 조금 잠잠해질 때쯤엔 대학교 졸업 후 곧바로 드라마 보조작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무슨 일이든 신중한 성격이기에 더욱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리 겁을 냈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스물다섯 후반부에 갑작스레 보조작가 일을 멈추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보조작가 일을 멈추고 보니 마치 온 세상이 어딘가로 나를 내모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바쁜 일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삶이 무료하면서도 여유로운 시기에 도달하고 말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이 든 게 '제주'였다.
이번 해 겨울은 제주에 머물렀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날을 제주에서 보냈다. 11월에 한 번, 12월에 한 번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오죽하면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토리를 본 사람들이 몇 번이고 '또 가?' 혹은 '또 제주도야?'라는 질문을 하겠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러 번, 꽤 자주 제주에서 보냈음에도 여전히 제주는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제주는 갈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나는 섬 같다.
제주에서 조금은 알 것 같은 게 있었다. 바로 '나'였다. 혼자 할 줄 아는 게 생각보다 하나도 없었던 나는 제주에 가서 뭐든 해보기로 결심했다. 겁이나 불안 같은 건 제주에 다 버리고 오기로 했다. 그러나 정작 버리고 온 건 그러한 무모한 패기였다. 제주로 간 후에야 온전한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겁이 많다가도 무모한, 사실은 싫은 것보다 좋아하는 게 더 많은 나 자신을 말이다.
그래서 이번 제주 기록은 제주에 버리고 온 것들보다는 가지고 온 것들에 대해 쓰려고 한다. 원래 여행도 짐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니까. 맛집보단 풍경을, 바다를 보는 일보다 바다가 남기고 간 흔적을 더 좋아하는 나를 적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