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글을 쓰고 나서
왜 나이가 들수록 고집스러웠던 사람들은 좀 더 고집스러워지고,
멋있었던 사람들은 좀 더 멋있어지는지 궁금증이 있었다.
그 궁금증을 가지고 비몽사몽하고 있었는데
EBS의 한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갔다.
김경일 교수의 심리학 강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시대처럼 인간이 오랜 시간을 산적이 없으니
이런 현상도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라고 한다.
고집스러운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간극이 나이만큼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간극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능도 성실성도 아닌, "개방성"이라고 말했다.
개방성...
다양한 사람들을 생각을 수용하고,
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해보는 것.
나이가 들면서 이런 기회가 점차 줄어들게 되니
그 경직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납득이 되었다.
저 선배는 젊었을 때 그런 경향은 있었어도
장점도 많았고, 저 정도는 아니었었는데,
나이가 드니 왜 뽀죡한 모습만 남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다양한 것을 받아드릴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다.
은퇴를 하고 나면,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몇몇의 사람들과의
교류로 제한되기 십상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다 비용이다.
에너지도 비용이고, 기회도 비용이니까.
그래서 점점 아웃풋에 대한 기대가 없는 상황에서
인풋을 넣는 것에 인색해지는 것이다.
"내가 이제 이걸 해서 뭐하려고"
나를 가로막는 이런 마음 말이다.
김경일 교수는 개방성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것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붓글씨를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새로운 세상도 만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 모임에서 뭔가를 새롭게 배울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아니면 오랜 지인들과도 무언가를
배우는 모임으로 바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찾아나서는 것이다.
좀 느슨하고 불편하면 어떻냐.
새로운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점점 경직되어가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오는 불편함으로부터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을 잘 써야겠다.
마구 흐르는 것이 시간이다.
지금의 시간들이 모여서 마지막의 나를 만들 것이다.
세상을 마감하는 그 날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나이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