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미 내 옆에 한참 전부터 있었다.
여고 친구들을 오래간만에 만났다. 나이가 들면 고등학교 친구들을 다시 찾게 된다더니 딱 그거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본 친구도 있고, 한 20년 전에 한번 만나고 연락이 안 된 친구도 있었고 이러저러하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지만, 어제 본 것처럼 근황토크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 실무팀장 혹은 실무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자연히 회사생활로 얘기가 넘어갔다. 그친구들은 정년 2-3년 남아있는 산전수전공중전을 겪은 고참 직장인들이다. 그들은 직장생활의 애로사항 중에 90년 대생들의 젊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 아니 약간은 짜증에 가까운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이 얘기하는 요점은 전화를 기피하고, 톡으로주로 컴을 하려는 경향인 폰포비아 현상, 문제가 있을 때 방관자로 있는 경향, 즉 사과를 하거나, 문제해결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 의견을 구하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또 팀워크로 함께 무언가를 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부분들. 이런 것들이 대부분을 이루었다.
물론, 나도 젊은 직원들과 일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리더들의 고충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건 98년생인 우리 아들이었다. 그 아이를 키우면서 그 후로는 지켜보면서 신인류라고 느낀 강력한 에피소드가 있다.
한 10살쯤이었을 때, 오늘 저녁에 친구들을 만난다고 했던 아이가 집에서 안 나가고 있길래 왜 안 나가냐고 물었더니, 온라인게임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여서 함께 게임도 하고, 채팅도 한다고. 내가 미디어를 공부했으니, 그런 현상을 책으로, 논문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서 아들을 통해서 접하니 퍽이나 당황스러웠다.
또 한 번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화장품을 판매하는 전문점인 올**영에 갔었는데, 내가 점원에게 뭐가 어디 있냐고, 그건 뭐냐고 물어봤더니, 나에게 얼굴을 찡그리면서 그냥 엄마가 좀 찾아보면 되지 그걸 왜 그렇게 무섭게 물어보냐는 거였다. 한마디로 내가 노력을 하지도 않고 그냥 점원에게 물어보는 게 무례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물론 사근사근한 말투도 아니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게 몸에 배어있으니, 어느 정도는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눈에는 나는 매너없고 무례한 꼰대였다. 나 그렇게 무례한 사람 아닌데 쫌 억울했다.
대학교 신입생 때는 더욱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게 만드는 사건이 생겼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방에 가보니 핸드폰이 가지런히 책상 위에 놓여있고, 아이는 사라졌고, 하루 종일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온갖 나쁜 상상이 들었는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나를 가지고 혼자서 하루 종일 고민했었다.
저녁에 천연덕스럽게 집에 들어왔는데, 핸드폰 없이 월미도를 다녀오는 챌린지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하지 않아도 월미도쯤은 쉽게 다녀오는데, 스마트폰이 없다면 월미도를 다녀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과연 내가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참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아들의 실험과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했다. 이것 말고도 나의 눈으로는 충격 같은 아들의 에피소드들이 많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없었던 시절에 성장기를 보냈던 우리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기술은 당연히 상당히 발달했을 것이고, 또 그런 와중에 우리는 무리를 짓고, 계층을 나누고, 무례하고 이런 것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 터프함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상처를 덜 받아야 하고, 적당히 무시하는 기술도 터득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꼰대"라고 부르는 흔적들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자라난 90년대 생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을뿐더러,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권위 있는 일관성 있는 어른이 주변에 부재했었다. 우리 아들도 3살이면 놀이방을 갔어야 했고, 그곳에 있는 선생님은 권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었다. 이 시대는 선생님께 권위를 요구하지 않았으니까. 이들은 우리 눈에는 "디지털 뒤에 숨어있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다.
이런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의 변화하는 힘을 믿으려고 한다. 꼰대라고 불리는 우리는 다음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우리가 배우지 못한 매너를 몸에 장착해 보려고 노력 중이고, 또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디지털 환경하에서 체화하지 못한 인간관계 맺기 기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체득하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의도적으로 생활에서 접목해보기도 하고, 또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서 느슨한 연대를 맺으면서 배워가고 있다.
나는 믿는다. 이 90년 대생들이 30년이 지나서 한 50대쯤이 되었을 때,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디지털 문명과 사회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후천적으로 무지하게 노력해서 배운 아날로그 문명을 잘 버무려서 우리 시대보다 훨씬 멋진 인류가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그때에는 또 신인류를 맞이해서 당황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