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3: 일 말고 뭘 할 줄 알아?

by 강명신

퇴임한 사람들을 진지하게 만나는 건 원래부터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이 아니라, 유튜브나 글을 통한 생면부지의 남이다.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을 만나면 나름대로 잘 준비되어 있고, 일을 하던, 취미를 찾던 참 단단하게 잘 사는 모습만 보인다. 그런데 유튜브나 글을 통해서 만나는 사회의 은퇴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나름대로 극복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중 제일 첫번째로 나를 당황스럽게 하고 있는 것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한창 일하던 시절에는 일하고, 가정 건사하느라, 건강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니 그렇다고 치고. 지금은 시간부자가 되어서 그동안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추측한 것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는데, 그 추측이 영 빗나가고 있어서 당황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또 손으로 뭐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그림 그리기, 도자기 만들기 등등을 꼭 해보고 싶어서, 호기롭게 은퇴하자마자 유화반에 등록을 하고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빠르게 하기는 하는데, 이게 영 재미가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유화는 계속 그린 곳에 또 덧칠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엉덩이를 붙이고 지겹게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과정이 나에게는 성취감도 없고, 지겹다는 느낌이 드는지 화실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 하는 것이니 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한 6개월을 하고 나니, 이건 내 적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이건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오십견에 걸린 내가 할 수 있는 운동 선택에 제한이 있어서 마지못해 선택한 것이었고, 원래 물을 엄청 싫어해서 숙제처럼 시작을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처럼 내가 추측했었던 나와 실제 마주한 나는 여가 생활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은퇴 후에는 찾을 게 자아 밖에 없어서, 자아를 찾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한 선배가 생각이 난다. 이제부터 나도 잘 모르는 나의 모습을 찾아야 헤매야 하는 작업을 재미나게 해야 하는 데, 사실은 그 조차도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내 모습이 약간은 서글프다.


한창 일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는 분들이라면, 가끔씩은 여유를 가지고 일 밖의 자신도 조금씩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몰입해야 하는 취미도 어느 순간에 짠하고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세상에 어느 하나도 갑자기 짠하고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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