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지옥에서 하는 꽃구경
동궁사우나는 일산 백석 이마트 맞은편에 있는 불한증막 사우나인데 오래전 이곳에 갔다가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사우나 한켠에 자리한 작은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있는데, 옆자리에 어떤 분이 와 앉았다. 새로 들어와 앉은 그분을 본 한 사람이 “정훈희 씨 닮았네요.” 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제가 정훈희예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목욕탕 찜질방에서 가수 정훈희를 만난 것이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분이 벌거벗은 목욕탕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을 밝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에 삽입된 노래 ‘안개’가 들릴 때마다 그때 목욕탕 사우나에서 만났던 정훈희가 생각난다. 최근에 정훈희를 떠올린 것은 읽고 있는 책에 실린 <플로라>라는 그림을 보고서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벽화의 부분인 이 그림을 두 번째 보는 것인데, 참으로 묘한 매력을 지닌 그림이다. 하늘하늘한 여인이 꽃다발을 들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그린 ‘플로라’를 보면서 왜 정훈희의 노래 ‘꽃밭에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플로라'는 그리스신화의 꽃과 봄을 관장하는 여신 클로리스(Chloris)를 말하는데,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프레스코 그림 ‘플로라’는 그 아름다움이 덧없음과 한 짝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여신 ‘클로리스’를 그린 그림은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Primavera,봄)’가 유명하지만 나는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플로라’가 더 마음에 든다.
그림 ‘플로나’나 노래 ‘꽃밭에서’나 모두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이 덧없음을 일깨운다. 꽃은 곧 시들지만 그림 속의 꽃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노래는 흘러가지만 노랫말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부르는 사람에 의해 다시 노래가 된다. 적막한 시간을 흘려보내며 인간은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한다. 그런 것이 없다면 어떻게 거대한 무의미함과 덧없음을 견디겠는가.
라틴어 ‘불라’(bulla)는 물거품이라는 뜻이다. 물거품 같은 존재 호모 불라는 노래를 하는 순간만큼은,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거품 같은 삶의 현기증에서 달아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