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도쿄 시부야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시작하자 화장실 청소부의 스타일이 저렇게 멋져도 되나 하면서 보다가 그가 일하는 화장실의 스타일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찍이 저런 화장실은 없었다. 저것은 화장실인가 화장실을 빙자한 우아한 미술관인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읽고 루 리드의 노래를 듣는 청소부가 일을 해야 어울리는 화장실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영화의 주인공은 스타일이 멋진 청소부가 아니라 멋진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목적이 ‘화장실 자랑’임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할 말이 없는 것이 이렇게 멋진 화장실은 영화로 남겨둘 만한 것이다, 영화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동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로 새롭게 변신한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의 모습을 담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이다. 원래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의뢰했지만 빔 벤더스가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 소우 후지모토 등의 건축가가 참가하여 개성이 넘치면서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멋진 작품 같은 화장실을 만들었다. 화장실 이름 또한 ‘세 개의 버섯(by 도요 이토)’, ‘모호한 공간(by 반 시게루)’ ‘숲 속 산책(by 쿠마 켄고)’ 등 예술적이다. 특히 반 시게루가 디자인한 화장실 ‘모호한 공간’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멋지고 신기하였다. 이런 화장실을 사용하면 왠지 미적 감각마저 쑥쑥 높아질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최근 대구 수성못 공공화장실이 화제가 되었다. 스페인 건축가가 디자인한 공중화장실에 9억 원이란 큰돈을 들인 것이 도마에 올랐다. 마침 〈퍼펙트 데이즈〉를 막 보고 난 뒤라 관심 있게 살펴보았는데, 이건 뭔가 어설프다. 공공화장실을 보다 멋지게 만들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주변 환경과의 어울림 없이 화장실 건물만 화려하게 눈길을 끈다. 세금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열심히 나가는 공무원들이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의 17개 화장실을 보고 와서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오래전 영국의 오래된 고서점 마을로 유명한 헤이온와이(Hay on Wye)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헤리포드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려 내린 곳에 위치한 시골마을 헤이온와이는 책마을로 알려져 나 같은 외지인이 일부러 찾아가는 관광지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저절로 형성되어 자연스러웠고 요란하지 않았다.
반면 헤이온와이를 보고 만들었다는 파주 출판도시에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없었다. 유명 건축디자이너가 설계한 출판사 건물 하나하나는 멋지고 개성적이지만, 전체 어울림이 없어 자기 자랑만 하고 그친 것만 같아 왠지 씁쓸하였다. 이런 전근대적이며 고리타분한 발상을 누가 하였는가. 결국은 나랏돈을 받아 산 땅값이 오른 출판사 사장들에게만 좋은 일이지 않은가.
멋진 화장실을 감상하는 것에 더하여 오래된 기억 한 켠에 묻혀 있던 루 리드의 노래를 듣는 일도 즐거웠다. 헤이온와이를 다녀왔던 그 시절 영국에 잠시 머무르던 시기 루 리드를 자주 듣곤 했다. 조선족 룸메이트는 중이 염불 하는 것 같은 노래를 왜 듣느냐면서 핀잔을 주었다. 인생에 그을린 듯한 루 리드의 음색을 싫어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어야겠지만.
혼자서 은밀하게 처리해야 하는 볼일을 이런 멋진 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게 잘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것만 같다.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그런 것을 경험한다면 화장실로서도 자부심이 생길 것 같다.